종교개혁 485주년에 즈음하여: 공로사상과 경품시대
김재성 교수
이번 주간은 종교개혁 485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빗텐베르그 대학에 내걸었던 95개 조항은 전 세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
켰다. 하나님께서 당시 성도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를 사용하셔서 진리의 나
팔로 서게 하신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함께 신학교육기관도 많이 늘어난 우리나라는 그동안 크
나큰 축복을 받았다. 전세계 기독교계가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리만큼 성령으
로 충만하였고, 교회마다 차고 넘치는 물질적, 신앙적인 축복을 받았다. 한국
교회는 그런 축복들을 이웃과 전세계 이웃들과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교회
가 되었다. 1만명에 이르는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참으
로 귀한 일이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한국 기독교 교회는 지금 엄청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약 70-80%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자립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 주 5일 근무제
도입
으로 성도들의 출타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매년 졸업시즌마다 포화상
태로 늘어난 목회자 수에 상당수의 공급이 지속되고 있다. 상당수 개척교회들
이 설립되어지고 있고, 발전하고 있듯이 불신자 전도의 열매가 획기적으로 늘
어나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한국인들은 교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대에는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제는 하나
님께 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점은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근대 이후에 서양
기독교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였다.
우리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 성숙화의 과제를 안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사회
적 사명과 책임감을 발휘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병 고침이나, 기적의
체험도 하더라도 개인주의적인 기복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동시에 각종
부조리와 병폐로 찌들어가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사
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도 보다 열심히 세상속에서 봉사해야 한다. 기도
원에도 가야하고, 동시에 자원봉사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체 교회의 부흥만 집착하는 과열된 성장위
주의 경쟁논리
에 있다. 장로교회 중에서 보수적인 교단에 소속된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전
도 왕에게 경품을 걸었는데, 승용차를 한 대 드린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 교
역자 생할을 했던 목사는 이런 현실 앞에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어떤 교회에서는 해외여행이나 제주도 여행 등의 특권도 드린다는 것이
다. 20, 30년 전에는 성경암송대회나 다독왕을 뽑으면서 금반지 하나를 축하
의 상징으로 시상하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전도사님들에게
할당제로 새로 인도해올 사람들을 책임지우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목표량
을 채우지 못하면 사임한다고 한다.
세상의 기업들이 날마다 생존전쟁을 치루고 있듯이, 우리 교회들도 영적으
로 그렇게 깨어서 전력투구해야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 기업의 논
리처럼 매일 목표량을 도달하지 못하면 도태되어야 하고, 마치 어떤 신문사들
의 지국경쟁처럼 쟁탈전을 치루듯이 전도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구나 우리 믿는 자들이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고생한 것에 대한 공적과 위
로는 하늘에서 상급을 받는 것으로 미뤄져야 한다. 하늘에서 큰상을 기대
하
는 성도가 아니라 이 땅에서 다 받으려는 자세는 종말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루터나 칼빈을 비롯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공로주의
를 내세우고 면죄부를 비롯하여 인간의 선행과 자선행위를 미화하고, 공로주
의를 부채질하는 잘못된 신앙을 개혁하였다. 그들의 개혁은 신앙의 개혁이
요, 교회제도의 개혁이요, 예배의 개혁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세상적인 공로주의를 버려
야만 한다. 보이지 않으시지만 모든 것을 알고 보고계신 하나님 앞에서 묵묵
히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상급
을 바라보면서 마땅히 해야할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삶과 사상은 우리들의 교회가 제대로 서있는가를 점검하는
좋은 안목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지금 오늘에도 살아있는 전통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종교개혁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과연 어
떤 말을 하려고 할 것인가? 개신교회의 모든 열정이 식어지고 교회를 중심으
로 한 모든 모임이 죽어버린 독일과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을 다
시 부
흥시키자고 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세 제
자들은 졸고 있었듯이, 지금 우리가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
아야 하겠다. 교회중심이지만, 그것이 공로사상에 젖어있고 지나친 교회 봉사
의 피로감과 실망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한국 교회가 다시 깨어나
서, 하나님의 은총만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버리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
미암아 살리라’는 원리에 충실하게 되기만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