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를 좇는 세상, 그 뒤를 따라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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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좇는 세상, 그 뒤를 따라가는 교회?

김재성 교수

요즘 초등학생을 포함하여 소위 성형수술 붐이 더욱 조장되고 있다는 지적이
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인 “타임”지에서도 한국사람들의 성형수
술을 보도할 정도가 되었겠는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출생시의 외모를 고치
려는 이런 현상을 언론에서는 ‘외형주의’ (루키즘, “Look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은 국민 일인당 화장품 소모량이 제일 많은 나라라고 한다. 자기의 외모
를 가꾸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하자, 각종 기능성 화장품이 경쟁적으로 
남자들까지 미혹하여 마침내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남보다 더 나은 외모를 꾸미려는 미인경쟁은 언제부턴가 성을 상품화하는 미
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능가해 버리고 말았다. 누구
라고 할 것도 없이 대중 매체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
통령 선거전에 나서는 사람들까지, 모두 다 외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늘의 
세대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세상을 바로 잡아주는 ‘중심’이 교회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은 정말 시대를 초월하여 진리
다. 하지만, 교회에서도 이런 현상을 좀처럼 남의 이야기 아닐 것이다. 예컨
대, 성도들마저도 어느 지역에 이사를 가서 새로운 교회를 정하려 할 때에, 
우선 교회의 외형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신앙적 기준이 
모호해져버린 난감한 시대 속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외형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건물들이 제정 로마시대부터 지어져 왔다. 잡초 
위에 무너진 건물들을 보면서 공허한 인간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화려한 건물로 치장하려하고, 더욱 더 외모를 꾸미는데 경쟁을 하
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신흥 주택가나 아파트 지역에서는 불가피하게 여러 교회들이 같은 건물 안
에 들어서 있기도 하고, 나란히 이웃하여 세워져 있기도 하다. 그럴 때에 교
회간의 경쟁은 외모를 좇는 세상 사람들의 입맛에 따르는 듯하다. 교회가 필
요한 건물을 짓고, 교육관을 확장
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시설의 확충을 넘어서서, 신축 교회당마다 높은 첨탑들이 화려한 궁
전을 연상시킨다면, 그래서 세상사람들마저 고개를 저어버린다면 이것은 심각
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교회인가를 따져 봐야 하고, 그래서 교회 
선택의 기준을 말씀과 교리에서 찾아야 한다. 광야에서 호사스러운 옷을 입
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타락한 문화를 거부했던 세례 요한의 질타를 오늘의 
교회는 기억해야만 한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에도 세상 단체나 기관에서 하는 것처럼 거대
한 플래카드와 호화로운 화환과 선물과 치장이 동원되고 있다. 교회에서 거행
되는 결혼식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예식장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면 큰 문제
다. 세상이 외형주의와 호화판을 좋아하므로 교회가 뒤 따라 가는 것이다. 교
회의 장례식이 더욱 검소하면서도 품위 있게 고인을 추모하고 조문의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잔치처럼 호화로운 장례식을 자랑하듯이 하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 고
급 승용차로 자신을 과시하
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엠에프 위기를 자초하였다. 겉으로 위엄을 갖추고, 
우선 눈에 보이는 모습의 우아함을 드러내는 일이 유행이었다. 명품을 사들
고 다니면서 자신의 재력을 드러내야만 제대로 갖추고 사는 사람처럼 인식되
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한국교회가 색상이 화려한 실내장식을 더 선호
하게 되어 버렸다. 초대 교회의 출발지는 로마의 카타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 된다. 그곳은 무덤이 아니었던가! 건물이나 편의시설이 하등의 문제
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