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인 목회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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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목회 방향

김영재 교수

목회 방향을 논하자면 사람들은 목회의 방법에 주로 관심을 둔다. 그런데 
목회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양육하는 것
이라면, 교회가 갖추어야 하는 것은 교회의 참 모습이다. 교회는 마땅히 해
야 할 과업을 수행할 때 참 모습을 갖게 되며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
로 함께 자라 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수행해 온 2대 과업은는 선교와 디아코니아이다. 예수께
서 하신 일이 천국 복음 전파와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예
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시고 이를 실천하셨다. 사도들도 주를 본받아 복음전파와 
함께 구제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제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에는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 없
는 예배 행위는 하나님께서 증오하고 분노하시는 위선이라고 질타
하면서 하나
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며, 인자를 사랑하며 공의
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종교와 윤리는 하나이다. 율법에 따르면 윤리적인 계명을 
어긴 자는 이웃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한
다. 흔히 선교가 곧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도 말한다. 그럴법한 말이다. 그
러나 성경은 이웃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돕는 것을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한
다. 선교는 보다 종교적인 행위에 속하는 반면에, 구제 봉사는 윤리적인 행위
에 속한다. 선교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으며 받아들이
도록 하는 일임에 반하여 구제 봉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종교와 윤리가 하나이므로 선교와 구제 봉사는 병행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선교에는 대단한 열의를 보여 왔다. 그래서 
교회가 크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현재 만 명을 육박하는 선교사를 보내고 있
음에 자부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로부터는 사회에 환원할 줄 모르고 자체의 
비대만을 추구하는 종교기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교회는 디아코니아를 
너무 소홀히 해 왔으므로 균형을 잃은 것이다. 

6.25 동란 당시와 직후 거의 절대 다수의 고아원들이 기독신자들에 의하여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도움이 아니고 해외의 기독
교 신자들과 단체들의 원조에 의지한 것이었다. 당시는 교회도 구제의 대상이
었으므로 그랬으려니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제는 교회의 재정이 풍성해졌음에
도 불구하고 구제 봉사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은 별로 변함이 없다. 많은 기독
교인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단체와 기관을 만들어 돕고 있으나, 교회적인 참
여는 여전히 빈약하다. 

한국 교회가 선교에는 열심이지만 구제 봉사에는 소홀한 것은 보수적이며 
신령주의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즉 특별 은총을 강조하나 일반 은총과 
윤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균형을 갖추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선교 초기에 복음 전도에 크게 기여한 기독교 병원이 이제는 인
술을 펴지 못하는 의료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을 기독
교적 교육기관이나 전도 기관을 돕는 수익 사업 기관으로 여
기면서부터 기독
교 병원은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병원이 기독교 구제 봉사
를 수행하는 기관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병원이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한국 교회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성장의 침체에 빠졌다. 한국교회는 성
장의 정체를 벗어나는 활로를 교회의 조직과 소위 경영의 변화에서만 찾으려
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한국 교회를 성장으로 인도하는 활로는 교회
가 디아코니아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교회 본래의 모습을 갖추는 일에 있다. 

부산 평화교회(목사 임영문)는 그런 활로를 실증해 보이고 있는 점에 쾌재
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마을 주민들을 위한 의료봉사, 무의탁 노인 식
사 대접, 경로 관광, 이발, 미용봉사, 목욕봉사, 무의탁노인 환자 병원수송 
섬김, 관내 경로당 돌봄 사역 등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며 전도하자 일평생 절
에 다녔던 지역주민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동네 곳곳에 있던 점쟁이들이 하
나 둘 떠났다고 한다. 교회를 반대하던 주민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했고, 
동사무소와 구청이 교회가 하는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행정적으로 적
극 협조한다고 한다. 지역주민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 달라고 같은 주민들이 
돈과 물질을 보내어 오기도 한다고 한다. 지역교회가 주민들에게서 칭송을 받
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된 것이다. 이런 
교회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다(사도행전 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