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쇠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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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쇠퇴하는가?
김재성 교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새 봄을 맞이한 2천년의 역사에 기여하는
방안을 몇가지 논의해 보자.
첫째, 최근의 교회관심사는 숫적인 부흥이 멈추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성
장학자들의 논리대로 교회의 마켓팅 전략이 별반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많겠지만, 포화상태가 될 만큼 늘어난 교회수 때문이라
고도 하고, 경제난을 극복한 세상사람들의 심리변화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몇 년만에 몇 천명으로 성장했다는 서울 주변 신도시 교회들의
신화같은 세미나에 목마른 목회자들이 줄지어 모여든다. 무엇이 다른가를
배우려는 분들의 간절한 소망이야 전혀 잘못될 게 없다. 하지만, 무엇에 시
간을 쏟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분명한 바탕 위에서 교회가 나
아가야만 하는 것인데, 목회자로서의 우선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시점에서 거창한 교회발전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대형교회나 기성
교회의 모습을 닮아갈 일이 아니라, 견고하게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피고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교회만이 아름답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듯한 평가기준도 결코 정당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양떼를 돌보는데 목숨을 다하는 목자
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서 가족같은 공동체의 모습이 더 좋다는 식의 자
기 기만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칼빈주의 문화관은 교회가 세상을 바꾸고, 교회로부터 배우고 읽힌
진리들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인도하는 변혁주의 문화관이다. 단지 교회
내부의 갱신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세계에도 특별한 영향을 미
치는 것이다.
더구나 문화를 파괴하는 행동과도 다르다. 칼빈 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은 다
소 혼란을 겪었다. 루터는 음악을 허용하고, 악기의 반주를 받아들여 로마
교회가 사용했던 파이프 오르간을 계속 사용하였다. 그러나 쯔윙글리는 음
악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악기의 반주는 사람의 감상적인 심성을 자극하
여 연약하게 만들고 본성에 대해서 순전히 심리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모든 악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교회당에 설치된 모든 악
기를 도끼로 부숴 버렸다. 칼빈은 쯔윙글리보다
는 폭이 넓었다. 그가 설교
하던 생 삐에르 대예배당에는 창문에 아름다운 유리창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로만네스크 양식의 조각들의 아름다움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간
은 예배시에 보이는 예술들로 인해서 좀 더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
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성당에서 모든 것을 다 제거할 때에 강력히 거부
하였다. 비록 중세교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역사적인 부조
물이나, 그림이나, 조각품들은 예배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 한 배척할 필
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성경적인 갱신과 변혁은 혼란이나 무질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서문에서, 참된 기독교란 정부의 전복을 꾀하는 자들이
아니요, 세상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자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아님을
변호하였다. 그런 혼란을 초래하는 자는 사탄이며, 모든 아름다움과 선한
모양을 무너뜨리는 자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인간의 아름다움
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사탄적인 열광주의와 싸운 것이요, 그런 모습이 담
긴 로마 교회에 저항한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국가에 대해서 특별한 역할을 
행하고 있다.
교회는 사회 생활, 경제 및 정치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활성화 시키는 누
룩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다. 죽은 교회는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성령 안에서 살아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되는 교회는 사회질서에 대해서도 구속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교회는 국가를 개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회는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국가로 하여금 가난하고 약한 자를 보호하고
격려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정치지도자들은 참된 종교를 증진시키고 교회
를 강화시키는 일을 돕도록 하고, 마지막으로 잘못했을 때에 경고할 책임
이 있다.
하나님의 빛이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세상에 비춰질 때, 전 인류 사회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어
둠이 짙어갈수록 빛을 발하기 위해 혹독한 연단과 훈련기에 접어든 것이
다. 강한 교회만이 간악한 사탄을 대적할 수 있으므로, 강하게 훈련받은 목
자들을 통해서 강도높게 단련된 성도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있다고 본
다. 따라서 경건과 학문으로 무장한 목회자들이 다시 말씀
과 기도에 전심
전력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연마해 힘써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