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럴까? 멈추어 선 시계바늘 처럼 교회성장이 머물러 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단의 교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렇게 되어 가는지? 기우와 함께 깊은 탄식을 털어버릴 수 없다.개중에는 개혁
주의 신앙으로 교회가 굳게 서면 되는 것이지 숫적 부흥은 큰 문제일 수 없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교회성장이란 질적성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러나 성경말씀은 분명히 양적부흥도 말씀하고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 질과 양
을 겸한 부흥이 바른 부흥이며 성장일 것이다. 어느 하나를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그런데 왜 우리는 멈추어 선 시계바늘 처럼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는
가?사람들 중에는 ‘개혁운동을 하느라고 목회다운 목회를 못했다’고 말한
다.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다. 어떻게 들으면 야유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편
으로는 자조적(自嘲的)인 말로 들리기도 한다.우리는 십여년 전 부패타락한
집단에서 탈출하여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새로 세워진 합동신학교는 개혁주
의의 도장이었고 요람이었다. 열심히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몰
려 왔다.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러나 근래에 이
르러 자부심과 기세(氣勢)는 시들어지고 비판의 소리만 거세게 들려오고 있
다. 총회정책의 궤도수정이 들려오고 있으며 특히 신학교육의 궤도수정이 강
도높게 들려오고 있다. 즉, 실천신학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사역
자들 중에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목회하면 실패한다’고 말하고 있다. 듣기
가 거북스러운 말이지만 듣고 넘길 수도 없는 말이다. 왜 신학교에서 배운 대
로 하면 목회가 안 될까? 신학교에서 잘못 가르쳤다는 말인가? 결코 그럴 리
없다. 합동신학교의 높은 학적수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총회나 신학교에서 유능한 목회자 양성에 힘을 쏟지 못했다는 것이
다. 신학교는 목회자 양성에 그 존립의 의미를 두어야 한다. 신학생들이 교
수 되기를 원했고 선교사 되기를 원했지만 목회자 되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신학교는 오로지 유력한 개혁주의 목회자 양성
을 지상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우리는 이 점에 등한히 했고 빈약했었다. 그
결
과가 오늘의 현실을 초래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합동신
학교를 통해 개혁주의 신앙에 굳게 선 유능하고 유력한 그리고 은혜롭고 뜨거
운 목회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