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밀레니엄 앞에 선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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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밀레니엄 앞에 선 자세

지난 연말 모 TV 방송사에서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류가
당할지도 모를 종말에 대하여 특집 방송을 한 바 있다. 그 방송의 내용
중에는 익히 알려져 있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과 최근 신통하
다고 일컫는 유명한 예언가들의 말을 빌어 1999년 8-9월경 태양계가
십자가(GREAT CROSS) 모형을 이루면서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
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8-9월경 태양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9개의 위성들이 십자가 형태로 배열된다는 것이 천문학계의 예측이다.
참고로 천문학계에서는 태양계가 십자가 형태로 배열된다 할지라도
각 위성간의 거리가 멀어 지구에 미치는 인력은 달이 미치는 인력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구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밝
히고 있다. 그러나 예언가들은 물리적 역학 관계를 떠나 그 때가 되면
지구에 상상치 못할 변화와 함께 종말을 가져온다고 예견하고 있다.
이런 종말 예언은 세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가 슬그머니 사라
져 왔었다. 더욱이 올해는 세기말과 더불어 천년기의 말미에 서 있기
때문에 지구 종말론을 과감히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뿐이다. 실제
로 예루살렘에는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고 모여드는 광신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세대주의에 입각한 사이비 교단에서는 2000년과 함
께 세계의 역사가 종말을 구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하
고 있어 종말론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격론을 가져오리라 예상된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교회는 어떤 자세를 견지해
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몇몇 보도를 보면
지구의 지축이 바뀐다거나(지축 이동설), 유라시아 대륙과 환태평양 대
륙이 충돌한다거나(대륙 유동설), 태양의 흑점이 최근 들어 급작히 확
장된다거나(흑점 확장설), 정체 모를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지 모른다는
(행성 충돌설) 등 종말적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도 이미 밝히신 것처럼 미래의 종말에 대해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날이 내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음
세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마 24:36). 문제는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는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
져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경고처럼 그 때와 시한을 알 수 없을지라도
(마 25:13)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으로 주님은 우리를
인정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마 25:23). 그렇다면 종말에 대한 관심보다
는 현세의 삶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이처럼 종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발상에 기인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지금의 자신
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면 가질수록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오늘과 달리 자기
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이 그들의 인생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입각한 성도라면 오늘 나에게 주
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은 내일 주어진 일이 있음을 잘 알고 있
다. 그리고 내일은 새롭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그것이 오늘과 연속선
상에 있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려 할 것이다.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
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또다른 
일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들의 미래관
인 것이다. 그러한 삶의 결과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담
담히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기독인의 삶의 자세여야 한다.
그렇다고 교회가 미래에 대해서, 또는 내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계시로 주어진 직선적 역사관에 근거한 것으로 창
조의 완성으로서 종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의 영광은 오늘
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 그 누
구보다도 그 날이 속히 올 것을 기대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무엇보다도 복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사 이래로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그의 나라를 경영해 오신
목적을 상기하고 지금 우리 교회가 그 연장선상에 서 있음을 늘 확인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기말적인 종말 현상과 천년기를 가름하
는 지금에 서 있는 교회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하나님 나라의 구체
적인 현현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어느 사람은 들떠 있기도 하고 어느 사
람은
종말의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복음의 가르침에 확고
하게 서 있기 위해 노력해 온 성도라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
여 묵묵히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이것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보여준
지혜로운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어떻게 되겠지
하는 요행심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리고 그 날에 주님께서 기필코
우리 각 사람을 판단하실 것이라는 달란트 비유를 상고하며 우리의 삶
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어리석은 생
각은 우리 모두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