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화폭 위에 주님의 세계 담아내
교회당 건축 위해 7억원 상당 작품 헌납한
서양화가 장완(張完)을 찾아서
교회당 건축을 위해 시가 7억 원대의 그림을 헌납했다고 한다면 분명 세
인들의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서양화가 장완(60세, 청아한 교회 집
사)에게 있어선 그런 관심은 절대 사절이다. 혼신을 담은 작품을 선뜻 교회
당 건축을 위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화폐적 가치
를 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조금이라도 주
님을 위해 내놓고 싶은 충정으로 이해한다면 그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
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순(耳順)의 나이답게 그에게 있어 인생은 아름다운 그림 그 자체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오히려 거추장스런 장식에 불과할 뿐, 그의 삶은 그 무
엇으로부터라도 자유스럽다. 거침없이 화폭 위를 달리는 붓끝은 그래서 힘이
있다. 우주의 원리를 가히 극복한 자연스러운 율동이 그의 절제된 손놀림 속
에 담겨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성화(聖畵)는 매우 치밀하고 완벽한 영감 없이는 그릴 수 없는 작업이죠.
그렇기 때문에 구성의 첫 단계에서부터 구체적인 색감까지 눈으로 보기 전
에는 절대로 작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구도만 가지고도 절로
작품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그가 이 말을 할 때에는 기자의 등골이
써늘할 정도로 비장해 보였다. 어느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
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노래했지만 장완의 작품들은 영
원전부터 비춰왔던 빛의 색감을 이미 담아내고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림을 보여주실 때에는 그저 잠잠히 기도만 할뿐
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도만 할뿐입니다. 한 작품을 하기 위해 주님께서
전체를 다 보여주실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기
다림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기다림 그 자체가 이미 작품의 완성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 앞에선 세월을 논할 수 없다. 이미 세월을 먹고사는
것이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8살 때부터. 호남의 명문 남성
중고를
거쳐 홍대 미대를 졸업(65년 2월) 했고 77-80년 국전 4회 연속 특선이라는
초유의 기록 보유자인 그는 서울 돈암동 소재 돈암 미술학원에서 40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해 온 교육가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98년 봄이 오기도 전에
분당 불정동 불곡산 자락에 제 2의 인생을 위해 거처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박한 마음으로 성화를 그려 나가는 그의 마음은 생기 넘치는 봄내음
처럼 푸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