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수빈 작 – 이음 #3, 45.5*37.9 mixed media on panei 2018
햇빛편지
오해와 편견
오래전. 새벽기도 길목에서 늘 별을 만났다. 별이라기에는 너무 가까이 반짝임이 이상할 정도였다. 어떤 학생도 공동 기도노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새벽기도 갈 때마다 유난히 반짝이는 샛별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그 별은 저에게 소망이요 빛이 됩니다.”
얼마 못 가 그 별이 실은 인공위성임을 알았을 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진실을 알려 줘야 하나. 결국 그 친구에게 글을 남겼다. “네가 매일 보던 그 별이 인공위성일지라도 너에겐 영원히 샛별이야. 평생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빛을 잃지 말자.” 아마도 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었으리라.
그것은 아름다운 오해, 누구도 손해 볼 것 없는 착각이었다. 초승달을 그믐달로, 나도밤나무를 너도밤나무로 알더라도 그런 지식의 오류는 파괴적이지 않다. 개인적 인지의 착오는 수정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을 넘어 집단적 세력에 연계한 악한 오해는 사회적 고질이 된다. 그런 오해가 축적되어 편견으로 학습이 되면 수정하기 어려워 갈등의 근원으로 똬리를 튼다.
우리는 그런 파괴적 집단성 오해와 편견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편견의 색안경을 끼면 모두가 좌파 아니면 우파로 보인다. 동성애자는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즉각 제거해야 할 좀비로만 보인다.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국가를 초토화시키면 주의 나라가 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종교재판으로 마녀사냥을 정당화하고 총칼로 신앙을 강요한다. 지역과 국가를 비하 혐오하고 인종을 차별하며 그런 편견을 확산한다.
역사 속의 오해와 편견은 많은 경우 비극을 낳았다. 한 소년이 자라며 열등감과 오류 속에서 히틀러가 되고 터무니없는 우생학에 근거한 게르만 민족의 자부심을 자극하고 이용해 국가적 편견을 조장했다. 최면술사처럼 전국민의 착각을 야기했다. 집단 착란의 결과는 희대의 홀로코스트와 살상으로 점철된 세계대전이었다.
악한 오해와 편견에 근거한 일탈은 꿈이나 비전으로 미화될 수 없다. 정치능력, 권력욕, 야망이란 말로 그 죄성을 약화시키는 것마저도 잘못이다. 그것은 그저 탐욕이요 광기이다. 나치의 만행은 인종과 장애자와 약자에 대한 의도된 편견이 실천된 죄악이다. 오늘 우리가 심히 우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오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착란과 광기다. 더욱이 고상한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학습되는 편견의 파괴성이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