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특집| 한국 기독교 독립운동사 탐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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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특집

 

한국 기독교 독립운동사 탐방 (1)

<대구 영남 지역 기독교 독립운동사 탐방>

 

*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기독교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고
교회나 단체에서 답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소개하였다. -편집자 주

 

  • 3·1운동과 대구 지역 기독교 독립운동

대구는 애국의 도시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그리고 이후의 현대사에서 2·28 민주 운동 등으로 빛나는 곳이다. 일제의 간계로 나라의 빚이 늘어 자주권이 무너진 1907년 당시 정부 1년 예산에 달하는 국채 1,300만 원을 갚고자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발화점이 대구였고 중심인물은 서상돈이었다. 대구 국채보상운동 기념관과 공원을 먼저 찾아 새로이 애국심에 불을 지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70, 월요일 휴관, 053-745-6753)

 

대구제일교회와 거기에서 분립한 남산교회는 독립운동 및 당대 3·1 만세운동의 모체였다. 남산교회의 백남채 장로, 김태련 장로, 그의 아들 김용해 성도, 이만집 목사(아래 부조 사진 참조)는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 운동을 주도한 분들이었다.

 

구 대구 제일교회당/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대구시 중구 남성로 23)

 

대구 남산교회 100주년 기념 부조 _ 한기환 작 (백남채, 김태련, 김용해, 이만집)

 

대구 기독교 운동의 선구자 이만집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을 통해 서울의 만세 운동소식을 전해 듣고 대구 만세 운동을 총괄 지휘했다. 이로 인해 3년간 옥살이를 하고 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도피해 금강산에 입산, 수양관을 세우기도 했다. 그 아들 성해 역시 만세 운동으로 6개월 투옥되었다.

김태련 장로는 서문 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2년 6개월 복역 후 신간회 활동을 했고 1931년 일본 교토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3년간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다 강제출국 당했다. 귀국해서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 아들 김용해는 만세 운동 때 아버지가 피투성이로 쓰러진 것을 보고 일경에 저항하다 구타로 실신했고 고문의 여파로 그해 3월 29일 순국했다.

당시 계성학교 교사였던 남산교회 장로 백남채는 만세 운동 주동자로 2년간 복역하고 중국에서 벽돌공장을 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조달하였다. 1923년 대구에 조양회관 건축 시에는 벽돌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의 동생 백남규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정부 의정원 경상도 대표위원이 돼 군자금 모금 활동에 힘썼다.

남산교회 교인 이덕생은 이문주 목사의 아들로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비밀결사 혜성단 활동을 하며 1921년 독립운동지 ‘신한별보’ 제작 배포로 1년 옥살이를 했다. 그 후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생활비 대부분을 군자금으로 쾌척하고 궁핍하게 살다 별세하였다. 그의 부인 장성희는 임시정부 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용규 목사는 1918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했고 1920년 임시정부 군자금을 조달하다 체포됐다. 1928년 목사가 되어 선교사를 통해 미국무장관에게 일제의 학정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 후에도 신사참배 거부로 복역했고 37회나 피검 또는 투옥됐다. 박상동 목사는 1919년 대구 만세 운동 참여로 1년 복역했고 194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1년 6개월의 옥살이를 더했다. 김은도는 신학교 재학 중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설교 사건으로 투옥돼 1945년 1월 인천형무소에서 순국했다.

 

  • 대구 교남 YMCA 회관과 독립운동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구 대구제일교회당) 맞은편에 있는 이곳은 1914년에 북장로교 선교사 헤리 블레어(H.E. Blair)가 자택을 건축하며 함께 지었다. 교남이란 영남지역을 지칭하는데 청년 학생들의 공부와 강연장으로 사용했고 3·1 만세 운동 지도자들의 회합 장소이기도 했다. 아울러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등 민족운동의 발전소와도 같았다. 1918년 대구 YMCA 창립 초대 이사장은 이만집 목사였다. 이 때 초대 총무가 김태련이었으니 YMCA 창립 발기인 모두가 3·1운동의 주도자들이었다. 1921년 출옥한 지도자들은 교남 YMCA를 재건하였다. 1929년 광주 학생의거 때 이원우 총무는 대구 지역 학생 만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교남 YMCA 회관은 후에 독립운동 비밀결사 신간회 대구지회 활동의 거점이었다. 인근에 청라언덕에서부터 선교사 챔니스주택, 3.1운동 계단이 이어지고 시인 이상화, 국채보상운동 지도자 서상돈 고택도 있는 이 일대가 대구 근대 골목으로 지정되어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교남YMCA회관 (대구시 중구 남성로 24, 등록문화재 570호)

 

  • 경북 지역 기독교 독립운동

경북지역 3·1만세운동은 포항에서 시작됐다. 대구에서 이만집 목사(대구제일교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이들이 포항지역 최경성 장로(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와 송문수 장로(포항교회)를 불러 3월 8일 오후 3시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구·경북지역 처음으로 3·1운동을 펼쳤다. 최경성 장로는 대구에서 체포됐고, 송문수 장로는 포항으로 피했다. 포항으로 돌아온 송 장로는 포항제일교회에서 운영하던 영흥초등학교 교사 장운한, 포항제일교회 교인 이봉학, 이기춘 등과 중심이 돼 장날인 11일 여천시장(현 포항소망교회 일대)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했다. 사전에 발각되어 송문수 장로 등 주동자 4명이 검거 됐지만 여천 장날에 수백 명의 군중은 만세를 불렀다.

영일군 청하, 송라면의 3·1일 운동도 교회가 중심이 됐다. 3·1운동과 관련해 옥고를 치른 청하면민 23명 중 14명이 대전리 주민이었고 그 중 13명이 대전교회 교인이었다. 나머지 9명은 청하 덕성리 주민이었다. 그들 대부분도 청하제일교회 교인이었다. 청하, 송라면 주민들은 청하 덕성리 장날인 22일 오후 1시 30분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포항시는 3·1운동 기념식을 송라면 대전리에서 개최하고 있다.

영덕지역 만세운동을 추진한 영덕 낙평교회의 김세영 조사는 유학차 평양신학교로 가던 중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한 뒤 영덕으로 내려와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과 만나 영덕지역 만세운동을 제안하고 함께 준비해 3월 18일 영해지역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경주 도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박영조 목사는 경주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대구형무소에 1년 복역했고 후에 남산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1919년 영주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인서 장로는 마포형무소에 2년 복역하는 중 신자가 되었고 1945년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형되기 직전에 광복이 되어 출옥하였다.

 

대전3·1의거기념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길 120번길 22-5,
월요일 휴관, 054-270-2941) _ 사진 | 이상용 기자 _ 경북

 

  • 부산 지역 기독교 독립운동

부산의 만세운동도 큰 장날에 거행되었다. 대표적인 3·1운동 만세 유적지로 구포 만세거리와 동래 만세거리가 있다. 그 중 동래는 부산의 중심지로서 일제하 부산의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1919년 서울의 3·1만세 운동이 이곳 동래읍에 전해지며 부산시내에도 기독교계열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3월 7일,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대표는 동래고보(현 동래고) 학생들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봉기를 약속하였다. 이에 동래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군청(현 동래부 동헌) 앞 망미루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십 매의 전단을 뿌리자 부산에서의 만세 운동이 시작된다. 주모자 3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그 후로도 동래 시장을 중심으로 항일 운동이 계속되었다. 부산지역 기독교 민족 운동은 부산진 일신여학교와 초량교회 정덕생 목사 및 윤현태, 윤현진 집사의 만세 운동이 특별히 기억되고 있다.

 

동래 거리 3·1 만세 운동 재현 (출처 _ 국가보훈처)

 

대구 영남 지역의 기독교 독립운동 탐방을 끝내니 감사함과 뜨거움이 몰려왔다. 대구의 시인 이상화의 절창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과 끝 구절이 겹쳐 가슴에 절절히 파도친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탐방 취재, 사진 _ 편집국

* 참고도서 _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 정만진 지음, 국토,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