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사모세미나를 마치고> “다시 빗자루를 잡으며” – 김진숙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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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사모세미나를 마치고>

“다시 빗자루를 잡으며”

김진숙 사모_구리 기쁨의교회

마치 아득한 꿈 속 나라를 다녀온 듯하다. 3박 4일간의 경남 통영 나들이, 
세상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게 여행이고 ‘바다’나 ‘섬’이란 단어만 나오
면 동화적인 신비감에 젖는 나를 잘 아는 남편이 등을 떠민 결과였다. 지난 
2000년 이곳 구리에 남편과 함께 교회를 개척한 이후 무려 7년 만에 가족과 
교회의 수고로부터 자유를 얻어 나는 소풍 나온 마음으로 새처럼 통영으로 
날아갔다. 

개척 후 처음 나들이

첫날인 1월 7일 2시, 바다가 보이는 마리나 리조트에 짐을 푼 250명의 사모
들의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넓은 홀을 들어서는데 농어촌부 섬김이 목사님들
께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지극한 친절로 우릴 맞아 주셨다. “존경하
는 사모님 환영합니다! 사랑하는 사모님, 잘 오셨어요!…” 연발로 터지는 
뜻밖의 축포에 그야말로 황송하면서도 너무 감사해 콧등이 시큰했다.
총회장 목사님의 “나 자신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 지성소
에 금과옥조처럼 새겼다. 이어 진행된 윤두경 사모님의 특강은 우리의 마음
을 울렸다 웃겼다 그야말로 감동 비빔밥이었다. 시댁식구들과 끝없는 갈등에
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대처하신 인내심, 한 자매를 전도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님까지 모셨다는 대목에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또 남편에게 매혹적인 아내가 되어야 한다며, 그 시범을 몸소 실연해주시는 
사랑에 우리의 폭소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노회별로 한 방씩 차지한 
우리들은 밤 깊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놓고 놀다가 또 그렇게 사모라는 
동질감을 덮고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 김윤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대망의 통영 관광에 올랐다. 
강의실 입구 테이블에 멀미약이 “멀미 안녕!~” 을 외치며 서 있었다. 아
침 든든히 먹고서 멀미약을 꿀꺽 삼킨 뒤, 두 대의 배에 나눠 타고 통영 바
닷바람을 한껏 누렸다. 
여기저기에 있는 거북선과 기암괴석들 그리고 동백나무들이 유람선을 타고 
콧노래를 날리며 지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그동안 수고하셨어
요! 참 잘 오셨어요!”하는 것 같았다. 행복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
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한나호를 견학했다. 박수진 목사님이 이끄시는 의료 선교호
를 둘러보면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로 구성된 팀원들
과 “샬롬, 샬롬”을 외쳤다. 우리 주님의 보혈로 거듭나 한 자녀가 된 사람
들, 피부가 다르면 어떻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또 어떠리. 주님은 한 분! 
소풍 나온 마음은 그분으로 인하여 더욱더 우리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그리던 김용의 선교사님의 시간. 복음학교를 두 번이나 다
녀온 남편(이정우 목사)으로부터 김용의 선교사님의 놀라운 복음을 들어온 
터라 사모하는 심령으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남편을 통해서 귀에 딱지가 붙
도록 듣던 분, 순회선교단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메시지를 훔치듯 하며 뵙
기를 원했던 바로 그 분이 내 앞에서 그 뜨겁고도 원초적인 핏빛 복음을 토
해낼 때, 내 영은 이내 콩알만해졌다. 
내가 깨닫고 체험했던 복음, 내가 만나고 누려온 주님과 어쩌면 그렇게 농도
가 다를 수 있는지…. 큰 은혜와 도전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나는 선교사님
의 그 말씀을 마중물 삼아 내 심령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주님을 향한 그리
움을 퍼 올리고 있다.
다음 날까지 새벽과 낮 집회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사자후처럼 들려온 그 뜨
거운 복음은 주님 한 분이면 족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김용의 선교사님의 말씀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뜨거운 열기에 쌓여있는 우리
들의 가슴에 권태진 목사님은 당신의 자작시 “만남”으로 아름다운 여운을 
만들어 주셨다. 시인 목사님의 시를 듣게 된 것, 이번 여행의 또 다른 기쁨
이었다. 
점심 식사 후, 민향 사모님의 사회와 함께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남
편과의 대화 단절, 신앙과 열정, 청소년 자녀교육, 경제적인 고충, 정체성 
문제, 영적인 갈급함 등으로 모든 사모들의 공통분모를 토로하는 자리였는
데, 다들 진솔하고도 현실감 있는 의견을 드러내셨다.
드디어 하이라이트인 노회별 발표회, 긴장감과 흥분감이 강당을 휘감기 시작
했다. 여기저기 분장한 팀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열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무대 위에선 산더미같이 높아진 시상품이 우릴 유혹했다. 대상은 김치냉장
고, ‘꼴까닥!’ 하고 목젖을 타고 침이 넘어갔다. 독창에서부터 합창까지 
열여섯 팀의 경연이 불꽃 튀듯 했다. 
그 중에서도 모두를 경악케 한 것은 인천노회팀이었다. 망가진 흑인 분장과 
춤과 익살, 신나는 한 판이었다. 마침내 앙코르가 축포처럼 터졌고, 인천노
회 사모님들의 익살은 우리들의 마지막 체면으로 남겨둔 꽃망울마저 터지게 
만들었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찬양에 맞춰서 흑조처럼 춤추시던 사모님
의 고혹적인 몸 찬양이 눈에 선하다. 사모님들의 마음에 저런 천의 얼굴들
이 있었다니!
숙소로 돌아와서도 우리들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으뜸상을 탄 우리는 뒤
풀이로 벗었던 보랏빛 드레스를 다시 입고서 깔깔대며 칭찬하고 재잘대며 자
축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많이 참석하고 더 잘하자며 손을 잡았다. 처음 
만날 때 서먹했던 마음들은 어느새 친동기간이나 된 듯이 끈끈하고도 다정
한 사이로 변해 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 온갖 맛난 음식과 간식들을 예쁘게 전시해 놓고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목사님들의 환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들의 그
런 모습을 보며 최고의 것으로만 가득 채워놓고 나를 환영하며 반갑게 팔 벌
려 환영하실 천국의 주님을 떠올렸다. 
틈날 때마다 “존경하는 사모님, 사랑하는 사모님”을 외치시며 위로와 격려
를 해 주시던 목사님을 뵈면서 “수고했다, 김 사모야! 수고했다, 착하고 충
성된 종아!” 하시며 면류관 씌워주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콧날이 시
큰해지고 자꾸 눈앞이 흐려졌다. 그렇게 통영에서의 3박 4일이 화살처럼 지
나갔다.

자꾸 시큰해지는 콧날

목요일 늦은 밤, 나의 사랑하는 가정과 사모하는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선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집안을 둘러보고 교회 여기저
기를 살펴본다. 그리고 나 없는 동안 어지럽게 널려진 것들을 정리하고 지저
분해진 구석구석을 쓸어낸다. 그렇게 난 빗자루를 다시 잡는다. 빗자루를 잡
은 나의 손에는 어느 때보다 힘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