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야고보, T국 일꾼 >
바람 부는 날이면 바울이 걸었던 드로아–아소 길을 기억한다.
동료 선교사들을 보내고 홀로 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 선교지를 향해 떠나던 1995년, 교회 앞에서 두 살 반, 오 개월 반 된 두 아이를 안고 우리 부부가 했던 인사말이 떠오릅니다. “저희는 잊히기 위해 떠나갑니다.” 21년이 넘은 지금 아내와 함께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웃곤 합니다. 잊힌다는 것의 의미를 선교지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잊힘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을 방문할 때면 늘 그 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 주신 교회와 교우들, 친지와 벗들의 손길을 통해 잊힌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 속에 우리의 자리가 있었던 겁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잊힘의 비밀을 배워 나가는 선교사의 삶이 너무 행복해서, 이 은밀한 영적 기쁨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가 사역하는 이곳은 초대 교회의 땅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 파송 교회와 후원 교회들, 선교사들과 현지인 일꾼들이 함께 일궈낸 초대 교회의 선교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아시아 땅입니다. 이 선교 현장에서 바울은 바울대로, 로마 제국의 핍박 아래 교회는 교회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워야 했던 험한 시대. 그러나 그 시대의 광풍조차 삼키지 못한 교회의 선교.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음을 증명하신 성령의 선교. 1, 2차 세계 대전 속에서도 결코 단절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선교. 그 세계 선교의 행진이 지금도 한국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음은 은혜 중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인구의 99.8퍼센트가 무슬림인 이 나라에서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더 없이 큰 특권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거친 영적 상황으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고단함이나 관계의 갈등, 사역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 가정에 몇 차례 큰 바람이 분 적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성탄절 전날 현지인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은 아내를 급히 국내로 후송한 후 병실에서 밤을 새워야 했던 시간. 돌아가서 현지인들을 다시 한 번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 응답으로 아내를 살려 주신 하나님. 그래서 망설임없이 선교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드렸는지요. 동역자 부부와 현지인 가정 사이의 오해로 인해 공동체가 벼랑 끝에 섰던 두 번째 교회 개척 시기.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동역자들도 현지인 신자들도 떠나가 버린 그 빈자리에 남겨진 우리 부부.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 다시 회복된 관계.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찬양했는지요.
물론 지금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날을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위기와 갈등에 직면할 때면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 노래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로 이전보다는 좀 더 빨리 여유를 되찾는 습관이 제법 몸에 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래하기에는 강도가 너무 센 폭풍의 언덕에 설 때면 여전히 어려워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바울이 걸었던 드로아–아소 길을 기억합니다. 선교 여행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중 동료 선교사들을 배편으로 보내고 홀로 아소까지 걸어간 그 한적한 시골길… 그는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그 답을 디모데후서 4장 16-17절에서 찾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디모데후서가 기록된 연대가 바울이 로마에서 다시 투옥된 A.D 66-67년이라면, 바울은 드로아에서 아소까지 걸었던 시골길에서 장차 복음의 영광을 위해 받게 될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밤새 기도한 것 같습니다. 바울의 생애에서 이 드로아–아소 길이 없었다면, 디모데후서 4장 16-17절의 위대한 고백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와 선교 현장이 겪어온 고난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가족임을 기억케 하는 몸의 흔적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국에서도 선교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열매들이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기도 하나, 그 스트레스는 나무와 열매들을 더 튼실하게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 함께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노래합시다. 노래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새 힘을 얻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역사로 세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