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장로교회를 회복하자
한국의 장로교회는 미국의 수정주의 장로교회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의 수정주의 장로교회는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올 때 가지고 왔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자기들의 실정에 맞춰 몇몇 조항을 수정하게 됨으로써 정통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아닌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라 장로교회 목사를 임직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정통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이 아닌 미국의 수정주의에 따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장로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미국의 청교도 후예들은 후에 양키즘으로 상징되는 소위 실용주의에 따라 미국 장로교회를 구축해 나갔으며 그 결과 미북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로 분리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진보적인 신학에 물이 들어왔었다.
미국 장로회 선교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예장통합측이 에큐메니칼 가입 문제로 미국선교부와 손을 끊었던 예장합동측보다 오늘날 더 진보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 것 역시 미국 장로회의 진보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예장합동측이나 예장고신측 역시 초창기 수정주의 미국 장로교 선교부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며, 따지고 보면 미국 장로교의 진보적 성향을 가진 장로교회 선교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반면에 호주장로교 선교부 영향을 받은 예장고신이 그나마 좀더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칼빈의 개혁주의 정신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및 예배모범과 권징조례를 근거로 하는 정통적인 장로교 사상을 바탕으로 이 땅의 한국교회가 장로교회 회복의 길로 가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작금 일부에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벨직신앙고백서와 도르트신경 등 3대 일치신조를 고백하는 개혁파 교회를 도입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고 있다. 물론 화란의 개혁파 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이 땅에 개혁파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하지만 칼빈의 개혁주의 사상이 유럽에서는 3대 일치 신조를 중심으로 개혁파 교회를 세워나가게 하였다는 점과 영국에서는 영국의 의회주의 영향을 받아 설립된 장로교회가 3대 일치 신조 이후 고백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및 예배모범과 권징조례를 바탕으로 장로교회로 세워나가게 되었다는 점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역사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가장 칼빈의 개혁주의 사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대륙적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개신교에서는 루터교회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루터란은 무늬만 개신교일 뿐이지 천주교 체제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반면에 대륙의 개혁파 교회들은 개혁주의 사상을 충분히 담고 있지만 그 정치적 실체는 상당히 딱딱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유럽의 교회들이 아마도 루터교회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으며 3대 일치 신조가 민주주의에 근거한 민의적 요청이 아닌 당시 군주들의 요청에 따라 작성되었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영국의 장로교회는 의회민주주의를 따르는 장로교인들이 주축으로 영국국교회(오늘날 영국성공회)와의 끊임없는 싸움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대륙의 개혁파 신조들보다 좀더 민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찌했든 역사적 과정에서 산출된 3대 일치 신조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공히 칼빈의 개혁주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교회정치 체제에 있어 장로교회 체제가 좀 더 민주적인 체제임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을 계속 계승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장로교회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수정주의 장로교회의 노선에서 벗어나 정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른 교회관과 교회 체제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신에 근거한 신학원에서 정상적인 컬리큘럼과 사상을 가진 교육이 실시되어야 하며 장로교 정신을 함양한 목회자들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에 근거한 역사적 장로교회를 회복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인 요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을 충분히 함양하고 드러내는 목회자들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한국장로교회는 역사적인 개혁주의 장로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