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된 칭의, 예약된 칭의’라는 용어의 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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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된 칭의, 예약된 칭의라는 용어의 부당성

 

유보된 칭의, 예약된 칭의와 같은 말로 한국교회를 농락하는 신학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울러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마치 선진화된 서구 신학인 것처럼 호도하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심히 통탄할 일이다.

그러한 주장을 호도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설명하기 위한 ‘이미-아직’이라는 용어를 들먹이면서 이미 칭의를 받았지만 아직 확정된 칭의를 받은 것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확정된 칭의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개혁신학자들이 말하는 칭의와 성화의 개념을 한국교회가 구원파적인 구원관으로 잘 못 이해한 것에 대한 뼈아픈 충고라고 평하면서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다는 생각은 잘 못된 신학이며,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선한 행실을 드러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가? 언제 한국교회가 구원파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것인가? 그리고 구원파 교리와 한국교회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마치 한국교회를 저급한 수준의 신학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단정하고 한국교회 신학이 구원파 교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주장에 무슨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인가?

신학은 단호하다. 어쩌면 죽고 사는 문제처럼 서슬이 퍼렇기도 한 것이다. 그런 신학을 가지고 패더럴 비전이나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면서 한국교회를 지도하겠다고 하는가?

우리가 받는 칭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의와 그 공로를 전가받음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슨 선한 것이 있어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다. 이것을 성화라고 하며 그 성화의 근거는 성도들의 견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칭의와 성화에 있어서 칭의는 한 번도 유보되거나 예약된 바 없다. 그것은 신적 작정에 속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믿는 것뿐이다. 이 신적 작정에 속한 일에 인간들의 얄팍한 이론을 끼어 넣으려고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