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사회 속에서 신자로 사는 길
신자들이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신자가 그처럼 빛으로 또는 소금으로 구별되는 삶을 사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작금의 우리 현실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정치의 부패지수는 거의 밑바닥에까지 추락한 지 오래며, 한동안 개혁의 기치아래 숨죽이던 온갖 부정부패가 그야말로 만연해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임을 부인하는 양심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회 가운데에 있는 교회들의 실상이 현실의 세속 사회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가히 교회들이 부패하는 만큼 이 사회가 부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울 만큼 이 사회는 총체적으로 타락과 부패가 창궐해 있다.
그렇다면 신자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거의 상식적인 내용인 빛과 소금의 사명이 왜 이 사회의 현실 가운데서는 바르게 실현되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의식과 대답을 되뇌고 있을 뿐인데, 그것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 대답들인지는 그렇게 되뇌어 대답하는 신자들 자신의 무미건조하고 확신 없는 외침들이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사실 부패한 사회 속에서 신자들이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청결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로 모인 신자들 대부분은 정결함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그 부패와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은 채로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회개는 신자들의 가장 단적인 구별됨이요, 희생을 당하는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들만큼 속죄하는 백성들의 낙망과 회개가 드러나는 것이 구약 제사의 외형적인 특징이었다.
따라서 이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개혁하는 빛과 소금의 사역을 신자들이 감당하고자 한다면, 그 주된 관심을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로 향할 것이 아니라 ‘교회로 모이는 본질’과 자신들에게 두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함께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만큼 갈수록 사회 구성원인 국민들의 양분(兩分)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급격히 타락해 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의 시간과 생산성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급격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갈수록 이 사회의 노동구조는 산업혁명시기의 영국과 미국에서 있었던 노동력 착취, 즉 미취학 아동들까지 최대한의 시간을 짜내 공장의 노동력으로 삼던 시대의 경험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 가운데서 신자들만이라도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잘 추구하여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함으로서 예배자의 삶을 구현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단 가운데 하나인 지나치게 노동집약적인 생산성 고취, 즉 일하는 시간에 쫓겨 저녁조차 없는 ‘회색도시의 삶’으로 내몰리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적절한 대안과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자들이 자신의 사업체 혹은 업소에서 경건한 가정예배를 실천하여서, 직원들이 아침저녁에 경건한 가정예배를 보장하고 그러한 것이 비록 불신자일지라도 모든 직원들에게 보장된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빛과 소금으로서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회 가운데 있는 장로회 교회들 가운데 장로정치의 모범을 구현하는 교회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으며, 더 나아가 노동생산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경쟁력강화라는 경영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신앙의 실천으로써 이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는 신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회 가운데 있는 수많은 교회들과 신자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예일 것이다.
신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교회다움’이요 ‘신자다움’에 있는 것으로, 이 사회 가운데서 어떻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교회다움과 신자다움을 실천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수반(隨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요지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바 마땅히 행할 바에 대한 신앙을 우리의 삶에 온전히 적용하고 실천하는 신앙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신자들이 얼마나 빛처럼 밝게, 그리고 얼마나 소금처럼 짜게 그 맛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목표요 방향이라는 사실을 깊이 상고하고 착념함이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