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차
위영복 목사 북서울노회 새꿈교회
요즘 내 몸이 이상했다. 손이 떨리 고, 심장이 요동치며, 귀가 먹먹해지 고, 머리가 무겁고, 일어서면 세상이 빙글 도는 듯 어지러웠다. 병원을 찾았 더니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마음속 깊이 쌓여 온 무거운 짐이 몸으로 터져 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짐의 이름은 ‘격차(隔差)’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마라톤 선수였 다. 마라톤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는 경기다. 그러나 앞선 사람과의 격차가 좁혀질 때면 속도를 높이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고, 결국 오버페이스로 주저앉게 된다. 반대로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아예 달릴 의욕을 잃는다. “나는 저만큼은 안 되겠구나.” 그렇게 마음이 무너진다. 요즘의 내 마음이 딱그랬다.
주님의 종으로 산 지 30년, 교회를 개척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자꾸만 ‘격차’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같은 시기에 개척한 동역자들은 예배당을 건축하고, 위임을 받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빌 린 예배당에서 줄어든 성도들의 빈자 리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린다. 팬데믹이 지나도 회복은 더디고, 새롭게 전도할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왜 이만큼밖에 안 될까.’ 그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내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공황의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를 다시 깨달았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함이 아니 라,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길을 끝까지 달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주님은 내게 “너는 왜 저 사람만큼 이루지 못했 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그분은 “내가 맡긴 일을 네가 성실히 감당하고 있느 냐”를 물으신다. 나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려 했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려 애썼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지치고 외로웠지만, 말씀을 바르게 전하려 애썼고, 작은 자리에서도 주어진 책무를 다하려 했다. 그 길이 느리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길이었다.
내게 맡겨진 달란트가 하나뿐이라 해도, 나는 그것을 땅에 묻지 않았다.
불평할 때도 있었고, 낙심할 때도 있었 지만, 여전히 그 달란트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있다. 열 달란트를 남기지는 못했어도, 주님 앞에서 ‘충성된 종’으로 서고 싶다. 세상은 격차로 사람을 평가 하지만, 하나님은 충성으로 사람을 보신다.
공황의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내가 약해질수록 주님은 더욱 강하게 일하신다. 내가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계셨다. 이제 나는 격차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기게 하신다. 내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붙드시고 견디게 하신다. 그분의 손이 내 인생의 걸음을 세우시고, 그분의 은혜가 나를 다시 달리게 하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느려도 괜찮다. 뒤처져도 괜찮다. 주님이 내 앞에 계시기에, 그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달린다. 이 경주의 승리는 나의 의지나 능력에 있지 않다. 오직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끝까지 붙드시고, 이기게 하시는 그 은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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