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과 안식일
도지원 목사/ 서서울노회 예수비전교회
본 글은 지난 8월 26일 예수비전교회당에서 있었던 ‘2025 교리와 부흥 콘퍼런스’ 둘째 날 도지원 목사가 발표한 글을 요약 발췌한 것이다.
주일과 제4계명
십계명 중 제4계명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일요일을 도덕적 계명의 차원에서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주일을 예배의 날로 지켜야 할 뿐 안식의 날로 지켜서는 안되는가? 이것은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 규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여부의 문제이다.
루터, 칼빈 등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제4계명에 근거한 도덕적 명령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편의와 질서상 매주 예배를 위한 안식의 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뿐, 제 4계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에 안식할 것을 요구한다고 보지 않았다. 반면 츠빙글리, 불링거, 마틴 부서, 하이델베 르크 신학자 자카리아스 울시누스 등후기 개혁주의자들이나 청교도들은 ‘안 식일 엄수주의’(Sabbatarianism)로 기울었다. 그들의 관심은 ‘매주 예배를 위한 안식의 날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영원한 도덕법이 그러한 날을 요구하는 가’에 있었다.
영국 청교도는 안식일 준수가 창조 규례인 동시에 십계명에 속한 것으로서 도덕법의 지위를 갖는다고 보았다.
제4계명이 도덕적이며 영원히 구속력이 있 는 아홉 개의 계명과 함께 십계명 가운데 하나임을 근거로 한다.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였던 폴 쥬잇은 “청교도의 안식일관은 기독교 예배일의 새로움 (newness)을 인정하는 반면, 기독교 시간의 안식일적 구분(the Sabbatical division of Christian time)을 인정 하므로 고대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와의 계속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일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의 이러한 안식일 엄수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떠난 것일까?
안식일의 근거는 창조인가, 구원인가?
만일 누군가가 안식일에 관하여 “안 식일 율법은 그리스도의 참되고 영원한 안식에 대한 그림자였을 뿐이다. 안식일 율법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취·완성 되었기에 구원의 안식을 누리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게 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 주장에 의하면 주일은 다른 날과 다를 게 없고, 주일 예배도 다른 날의 예배와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주장은 안식일의 근거를 ‘안식일 율법’, 즉 십계명의 제4계명에 두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안식일의 근거를 율법 이전 창조에 둔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창조를 근거로 한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은 타락 이전의 일이다. 이때는 아직 구원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전이다. 따라서 하나님 께서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안식 일의 의미는 ‘구원의 안식’이 아니다. 타락 이전 아담에게 안식일은 구원의 안식이 아니라 종말의 안식을 의미한다.
아담은 엿새 동안 일하고 제칠일에 안식함으로써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을 붙들어야 했다. 이것이 행위 언약에 포함된 내용이다.
성경에서 이러한 종말의 안식을 잘 보여주는 곳이 히브리서 4장이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그러므로 우리가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 4:1, 6, 9, 11).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성취된 구원의 안식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될 종말의 안식에 대해 말한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가 이 안식에 들어가려면 믿고 순종 해야 한다. 안식일은 이러한 창조의 목적, 즉 종말의 안식을 기억하게 하려는 장치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구원의 안식 이전에 종말의 안식을 의미한다.
안식일의 의미에는 구원의 안식이라는 면도 포함된다. 신명기에는 하나님 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일을 안식일 엄수의 근거로 제시한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새 언약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종말의 안식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 다. 그는 이미 성취된 구원의 안식을 누리며 맛본다.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기다리며 6일 동안 일하던 옛 방식을 좇지 않고, 이미 주어진 구원의 안식 속에서 6일 동안 일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미 완성된 구원의 안식을 기념하여 구약의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모이게 된 것이다.
영적 안식(구원의 안식)의 예표로서 구약의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의 안식일과 관련하여(그리스도인의 주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한 것이 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 니라”(롬 14:5).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그렇지만 종말의 안식에 대한 모형으 로서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남아 있다. 우리는 팔머 로벗슨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새 언약 하에서 안식일의 폐지를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모세 십계명의 영속적 의미를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창조, 역사 그리고 완성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구원에서 안식일의 역할을 반대하기보다 새 언약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규례를 완성하신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특권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가지 특권’은 하나 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
신자에게 여전히 유효한 제4계명
언약 아래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신자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얻게 하는 방편으로서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베풀기로 작정하셨다. 이때 계명(율법)은 멜란히톤이 말한 대로 ‘율법의 세 번째 용도’(교훈적 용도)에 해당 한다. 이것은 신자의 삶을 위한 규칙으 로서의 율법을 말한다. 십계명의 제4계 명도 예외가 아니다. 영적 안식의 예표 로서 안식일 계명은 그리스도께서 영적 안식을 가져다주셨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지만 신자의 삶을 위한 규칙으로서 안식일 계명은 신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도 안식일 계명을 언약과 결부시켜 말하는 이유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출 31:16-17).
안식일의 근거는 십계명 이전의 창조에 있으며 안식일의 의미는 구원의 안식 이전에 종말의 안식에 있다. 그래서 영적 안식(구원의 안식)의 예표로서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된 것이지만, 종말의 안식에 대한 모형으로서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남아 있다. 새 언약은 안식일 계명을 전부 무효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니 다. 새 언약은 오히려 신자의 삶을 위한 규칙인 안식일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공급한다. 이때 안식일 계명은 창조 규례에 근거한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제칠 일에 쉬신 것처럼, 하루를 안식하고 6일을 일해야 한다. 신자들은 그래서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켜야 한다. 이로써 신자들은 새 창조의 시작(구원의 안식 또는 영적 안식)을 기념하고, 새 창조의 완성(종 말의 안식)을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