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역사의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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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스로 진행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우주의 자연발생설을 받아들이는 현대인은 대부분 이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윤회를 주장하는 종교는 당연히 이노선을 따르면서 윤회설이 반복되는 사계절의 자연적 진행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긴다. 역사의 순환을 믿었던 그리스 철학도 유사한 사고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헬라식의 시간 개념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사람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였다. 그는 시간의 원순(圓巡) 개념을 직선 개념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시간의 모양을 원형에서 선형으로 바꾼 데도 의미가 있지만, 역사가 무한정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점과 종점을 가진다는 개념을 제공한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아우구스티누 스의 역사관은 시간에 끝이 있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가르치는 성경에서 나왔다. 그런데 성경은 시간에 종점뿐 아니라 정지도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역사가 제동 걸린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건이 나온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의 요청을 따라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해가 머물고 달이 멈춘 것이 대표적인 사건이다(수 10:12-14). 하나님이 시간이 진행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으신 것이다. 중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이 치료의 표를 요구하자 이사야 선지자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이 해시계를 뒤로 물러가게 하신 것도 놓치면 안되는 중요한 사건이다(왕하 20:11; 사 38:8). 시간의 멈춤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물러남을 말하기 때문이다. 일월이 고정될 수 있고, 시간이 정지할 수 있고, 역사가 빙화될 수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은 역사 자신이 아니다. 역사는 순전히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가게도 하시고 서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역사는 일반적으로 자연스레 전진하는 것이 허락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멈추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한다.

하나님의 쐐기는 개인의 경우에도 작용한다. 가장 극명한 예가 부활이다. 부활은 죽음이 지속되는 것을 정지시키는 쐐기이다. 엘리사 시대에 수넴 여인의 아들이 생명을 도로 받은 것이나(왕하 4:32-37), 예수님이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것이나(요 11:41-44), 베드로의 사역 중에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것(행 9:36-43)은 모두 그들에게 죽음의 시간이 제동 걸리고 생명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지속이 아무 제동도 걸 수 없는 필연이 아님은 생명의 환원에 시동을 거는 부활이 있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의미의 절정이 다(고전 15:20). 첫 열매라는 말은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마지막 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모두 경험할 전체적인 종말 부활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가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간다(요 5:28-29).

종말 부활은 역사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쐐기이다. 이로써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다.
역사의 쐐기인 종말 부활은 현재를 사는 신자들에게 중대한 실천을 요구한다. 부활을 믿는 신자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에 인생을 맡긴 사람들은 하루하루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례로 신체의 온갖 감각기관을 통해 오늘을 즐기는 데 힘을 기울인다. 그러나 신자는 역사에 인생을 맡기지 않는다. 신자는 마지막 때에 역사가 시간과 함께 종료될 것과 자신의 죽은 몸이 회복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은 모태에서 나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자는 위로부터 나서 부활을 향해 가는 것을 믿는다.

우리의 주위에는 부활에 관해 알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그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고 노래한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악한 동무들”이라고 불렀다(고전 15:33). 이런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어느새 부활의 기대를 잊어버리고 세상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부활을 잊게 하는 친구를 사귀면 안 된다. 나의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살펴봐야 한다. 역사에 빠져있을 뿐아니라 역사에 휩쓸리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라. 세상의 시세와 풍조와 분쟁에 말려 들지 말라. 오히려 부활을 기대하는 사람으로 역사에 대하여 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고 말하고 살아야 한다. 종말 부활이 역사의 쐐기임을 믿는 신자는 역사를 넘어 구속사를 사는 것이기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초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