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제공 (대표 : 조병수 박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에듀타운로 101
[기술공예 박물관의 동상. 조병수 촬영]
빛나는 인물: 천재 발명가 빠빵
드니 빠빵(Denis Papin, 1647-1713)은 블르와에서 위그노 의사 아들로 태어났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소뮈르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삼촌에게 위탁되었다. 소뮈르에는 위그노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수업을 받았다. 1661년, 그는 법학부, 신학부, 예학부, 의학부를 가지고 있어서 원근 각처 사방에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던 엉제 대학에 입학하여, 1669년에 의학사로 졸업하였다. 1673년부터 빠빵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동안 저명한 네덜란드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로 프랑스에 정착한 신교 신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의 조수가 되었다. 이때 그는 진공을 사용해서 동력을 일으키는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4살이 되던 해에 물을 선회시키며 발사하는 소화기를 설계하였다.
위그노에 혐오적인 루이 14세가 통치하는 동안 도시와 농촌에서 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빠빵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하위헌스의 추천을 받아 1675년에 런던을 처음으로 방문하였고, 이 기간에 안전밸브를 장착한 증기 압력솥을 발명하여 영국 왕립학술원에 소개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50년 전에 위그노 신앙의 선배인 만능 과학자 살로몽 드꼬스가 초석을 놓았던 증기기관 제작을 계승한 셈이 되었다. 1680년에는 빠빵 자신도 왕립학술원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 뜨레드니들가(Threadneedle Street)에 소재한 위그노 교회에 참석하였다. 이때 과학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데 집중했던 것처럼 보인다.
1681년부터 1684년까지 빠빵은 이탈리아 베니스에 머물면서 과학원의 실험 책임자로 일했다. 그러나 베니스 과학원이 경제문제로 폐쇄되자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위그노였기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빠빵은 루이 14세가 신교에 점점 더 심하게 압박을 가하다 마침내 낭뜨 칙령을 철회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큰 아픔에 사로잡혔다. 그는 위그노 신앙을 충실하게 지킬 결심으로 프랑스로 귀국하는 것을 포기하고 난민으로 남았다. 빠빵은 1684년 런던으로 돌아가서 1687년까지 왕립학술원에서 임시 관장으로 활동했다. 이렇게 하여 빠빵처럼 뛰어난 인물들은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1687년, 빠빵은 헤센-카셀 선제후의 임명을 받아 독일에 가서 마르부르크 대학의 수학 교수직을 얻었다(1696년까지 재직). 여기에서는(여기에서) 프랑스 위그노 난민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기계를 제작하였다. 예를 들면, 원심력을 이용하여 탄광에 공기를 공급하는 송풍기, 창문용 평면 유리 제조기 등을 발명한 것이다. 1689년, 그는 밀 펌프가 공기실 내부에 압력과 신선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소개하였다. 1690년, 기압의 동력이 압력솥에 기계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하면서 처음으로 피스톤 증기기관의 모델을 만들었다. 1705년에는 기압 대신에 증기압을 사용해서 또 다른 증기기관을 발전시켰다. 1707년, 카셀에서 화력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신기술이라는 책을 펴낸 빠빵은 마침내 카셀의 금속 제조소에서 세계 최초로 증기 실린더를 제작해냈고 최초로 증기선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일자리를 상실할 것을 우려한 독일 선원들이 신발명품을 파괴하고 말았다.
1707년, 빠빵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서 아이작 뉴턴이 관장으로 이끄는 왕립학술원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인정도 받지 못하고 보수도 받지 못하는 바람에 깊은 실의에 빠졌다. 말년에 가난한 삶으로 생을 마감한 빠빵은 런던 세인트 브라이드 교회(St Bride’s Church)에 안장되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교회의 출입구에 기념비가 설치되었다. 마르세유, 릴, 까르까손느 등 프랑스 곳곳에 빠빵을 기념하는 “드니 빠빵 대로”(Boulevard Denis Papin)가 있고, 출생지인 블르와에는 “드니 빠빵 계단”(Escalier Denis Papin) 꼭대기에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파리의 <기술공예 박물관> 안뜰에 세워진 빠빵 동상을 보면, 오른손으로는 압력솥을 누르고 왼쪽에는 성경책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실한 위그노였던 빠빵은 지금도 발명가이자 성경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