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시간을 소망하며 – 이재헌 목사

0
2

평안의 시간을 소망하며


이재헌 목사
(경기중노회 새과천교회)

어느 때보다 많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맞는다.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조금은 숙연해지면서 평소와는 다른 의미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해가 뜨고 동일한 시간의 분량이 주어졌지만, 새로운 마음을 다지며 소망으로 힘찬 걸음을 딛는 정월의 시간을 맞았다. 하지만 올해 2025년은 왠지 낯선 무게감을 가지고 출발선에 선 듯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큰 호흡과 함께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외쳐보지만, 여전히 시원치 못하고 무거운 사방의 공기를 느끼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극단적인 이념의 양분화가 만들어 놓은 분별의 잣대는 어떤 사실이나 말과 행위의 진실함을 찾기보다는 그것이 어느 쪽의 주장인지, 내가 속한 진영인지 아닌지를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윤리나 도덕과 같은 단어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무질서와 무가치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마치 안개 속을 지나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만약 이런 상황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자리라면 어떨까? 얼마나 갑갑하고 두려울까? 하지만 아찔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조종석을 머리에 그리다 보니 오히려 안도의 숨을 쉬며 평안함에 잠긴다. 안개가 가득한 하늘을 나는 조종사는 승객들보다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조종사는 계기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야를 막고 있는 안개보다는 계기판을 보고 있기에 앞이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 바른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 가득한 안갯속과 같은 답답함이 가져다주는 염려들이 부질없는 기우일 뿐이라는 생각이 내 속의 불안을 이긴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 속에선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들려오는 소리나 보이는 현실은 답답함을 넘어 불안함이 극에 달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절대 잘못될 수 없는 최고의 계기판이 있지 않은가.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현상들,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 염려하며 안타까워하는 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능하신 분의 소리가 있다. 그분의 인도하심이 있다. 현 위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감이 있는 우리 현실도 사실이다. “저는 낀 세대입니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 앞에서 살아갔던 세대나 나를 뒤따르는 세대와도 다른 나 자신의 의식과 문화와 가치관이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이 말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구동성이 되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만큼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나무가 몇 그루인지 세기가 어려운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속도는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가끔은 눈을 감아도 된다. 평온하게 독서를 즐겨도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속도를 제어하고 계시며 최선의 시스템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는 말씀을 믿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혼탁한 상황과 어지러운 형편일지라도 조금도 변함이 없고 흔들림도 없는 진리의 계기판인 말씀을 바라보자. 언제나 함께 하시며 떠나지 않으리라 약속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진정으로 평안한 시간을 기대하며 한 해의 걸음을 시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