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교사 은퇴와 이후의 삶 [1]
장창수/임월조 선교사(HIS 은퇴 선교사, 러시아, 이스라엘)
장창수 임월조 선교사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서시베리아 수도인 노보시비르스크에서 15년간,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흑해에 위치한 아나빠에서 9년간 그리고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간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였다. 30년이란 오랜 기간을 오직 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장창수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로서 24년간 러시아 침례교단 소속 목사로 현지인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수행하며 교회를 세웠고, 약 50명의 현지인을 세례 교인으로 세웠다. 아내인 임월조 선교사는 한국종이공예 마스터 자격증을 통해 현지인 제자들을 가르치며 전시회도 열었다. 이를 통해 현지 영주권도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장창수 선교사는 6년간 이스라엘에서 러시아계 교회와 협력하며 러시아계 유대인 전도와 마약 알코올 중독자 센터 사역도 하였다.
그러던 중 2020년 안식년으로 본국에 귀국하였다. 안식년을 마친 후에도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어 현지에 귀임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기간이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였고 은퇴 후 주거 문제도 해결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뜻하지 않게 보령에서 만난 어느 은퇴 목회자가 건축할 부지를 비싸지 않게 제공해 주었고, 2022년부터 1년간 건축해서 2023년 드디어 손수 만든 작은 시골 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주택비가 부족한 은퇴 선교사를 생각하여 몇몇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기관이 건축을 위해 헌금해 주었고 건축 재능도 기부해 주었다. 완공은 정말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였다. 이렇게 2023년 7월 입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입주한 후에는 “어떻게 이곳에서 생존하느냐?”는 심각한 질문이 나오게 되었다. 1994년 선교사 처음 파송 시에는 국민연금 제도도 없었고 개인연금도 가입하지 않았다. 오로지 ‘믿음 선교’ 한다며 선교지로 갔었다. 기도하며 고민하던 중 근처 장항에 위치한 닭 공장에서 8개월 동안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우리 부부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70세가 넘은 선교사가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보람도 있었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8개월째 되는 날 공장에서 두 번째 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일도 그만두어야 했다.
선교사로서 은퇴 후 본국에서 생존하려면 안정적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아내인 임월조 선교사는 충남노회 목회자 추천으로 ‘요양보호사’ 시험공부도 했다. 시험에 합격한 후 임 선교사는 재가 또는 목욕 요양사로 일을 하였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노령연금, 노인 일자리 임금, 그리고 자녀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살고 있다. 감사하게도 은퇴한 원로 목회자 부부가 지금도 매월 저희를 조금이나마 후원해 주고 있어 감사한 일이다. 막상 은퇴해보니 선교사는 파송 전부터 은퇴를 미리 준비해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은퇴 이전에는 늘 사역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은퇴 후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그동안 경험한 선교지 내용을 중심으로 5권의 전자책(https://rassvet0530.upaper.kr/)도 출판했다. 우리 부부에게 전자책 출판이 은퇴 선교사 생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