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간증의 위험성_유정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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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의 위험성

유정배 목사(경기세소교회)

 

간증은 내가 주를 만났다는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딱딱한 성경보다 더 정서적으로 다가오고 직접적으로 내가 만난 복음을 전하기에 더 친근하다. 대학 다닐 때 선교단체에서 선배들이 그런 간증을 많이 했다. 후배 입장에서 간증을 들으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러한 간증으로 인해 많은 초신자들이 주께로 나온 기억이 있다. 성경에도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에 가서 외친 간증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닌가!” 성경적 근거도 많다.

그런데 이 간증의 한계도 알아야 한다. 간증은 늘 결과를 말한다. 과정이 소홀히 되고 결과에 집중하게되면 성경 이야기도 오해하게 된다. 십자가의 강도가 구원받은 것은 한순간이다. 막판뒤집기였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서도 결국 아버지와 함께한 잔치만을 부각한다. 승리한 다니엘, 요셉 등 결과에만 집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전자공학과 교수에서 은퇴한 나의 은사 구 교수님이 나에게 “유 목사! 왜 교회에선 늘 성공한 사람만 간증자로 세우지?”라고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방식의 간증은 초신자들이 당신의 나라를 알도록 이끄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구원 후 성화 과정에 있는 신자들에겐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고난의 과정에 대한 인식을 소홀히 하게 한다. “내가 열심히 목회했더니 성공했다. 그러니 후배들도 열심히 하면 돼!” 그러나 열심히 해도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목회를 마칠 수도 있다.

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확률 정도는 배운다. 수학적 확률과 통계적 확률이 일치하려면 큰수의 법칙이 적용된다. 하나님 나라도 그렇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 중에 부자보다 가난한 자가 다수라고 말했다. 약한 자를 들어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십자가 복음이라고 그리 말했건만 간증을 통해 승자가 되려는 원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다. 세상의 마케팅을 가져와 교회를 인위적으로 부흥케 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성경에는 단번에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 이야기도 있지만,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도 형의 돌에 맞아 죽은 아벨 이야기도 있다.

긍정의 힘으로 한쪽만 보고 달리는 것이 좋은 신앙이 아니다. 오늘 나는 십자가 없는 영광의 승리를 달라고만 기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결과만큼이나 지금 고난을 관통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로 가슴 뛰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