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순례자의 거울
권중분 권사(노원성도교회, 본보 명예기자)
때로는 계획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0년 연초에 남미로 가게 된 것이 그러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페루의 크고 작은 마을과 산들, 바다와 강, 여행지들을 거쳐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향했다. 비행기 창으로 웅장하게 펼쳐진 안데스 산맥과 안데스에 터전을 잡은 도시들과 마을들이 보였다.
며칠 뒤, 라파스 공항에서 우유니행 비행기를 탔다. 우유니가 가까워오자 하얀 소금 사막이 나타났다. 해발 3600m의 고원에 형성된 우유니 소금 사막의 면적은 12,000㎢ (전남의 면적과 비슷함)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크기다. 소금 층 아래에 물이 있어서 소금 호수라고도 부른다.
드넓은 소금 지역을 날아서 도착한 우유니 공항은 소박한 모습이었고 소형 여객기들이 다음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30대의 건장한 체격의 현지인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서 영어로 인사를 했다. 짐을 찾으려고 기다리는데, 지은 지 오래된 공항이다 보니 수하물 컨테이너 벨트가 없어서 승객들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인부들이 직접 짐을 들어 나른다. 캐리어를 찾아서 가이드가 대기시켜 둔 지프에 실었다.
공항에서 마을로 가는 길,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황무했지만 야생의 멋과 순수함이 느껴졌다.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출발하는 기점인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며칠 머무를 숙소는 2~3층으로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역에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좋은 숙소라고 했는데 창문이 깨어져 있거나 문이 망가진 방들이 있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거리로 나갔다. 거친 환경 속에서 정원을 가꾸고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우유니 사람들과 마을에는 굳건한 삶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태양이 빛나는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달리지 않는 녹슨 기차들이 모여 있는 기차 무덤과 콜차니 마을에 잠시 들렀다가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아득한 광야를 한참 달리자 비가 자주 오는 계절이어서 물이 가득 고인 하얀 소금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득한 수평선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호수가 하늘을 반사하면서 하늘과 호수의 경계가 사라져 마치 하늘을 달리는 듯했다. 이정표도 없는 드넓은 우유니의 어느 귀퉁이였을까? 가이드가 차에서 내려서 안전한지를 점검했다.
소금 층 아래에는 물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소금 층이 두껍게 형성되지 않은 위험한 구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차를 타고 저 멀리 길게 뻗어 있는 산맥이 보이는 방향으로 달렸다. 가끔 여행자들을 태운 차들이 최적의 장소를 찾으려 여기저기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적당한 곳을 찾아 호수 위에 서 있는데 차갑고 강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물을 듬뿍 머금은 소금 호수는 하늘과 구름, 머나먼 곳에 늘어선 산맥까지 멋지게 담아냈다. 구름이 흐르는 짙푸른 하늘이 소금 호수로 내려와 두 개의 하늘을 만들며 아름답고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를 이루었다. 모든 풍경들이 호수에 그려지는 것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그대로 반사되는 장소에 서니 마음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우유니는 순례자의 거울이었다, 거칠어진 내면을 고르고 다듬으라고 창조주가 준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거울!
소금으로 지어놓은 식당으로 가려고 한참을 달려갔다. 그 지역은 표면이 건조했는데 육각형 모양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소금 지평선이 펼쳐졌다. 육각형의 테두리마다 소금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채 반짝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식용 소금을 쌓아 놓은 무더기들이 늘어선 구역이 시작되고 있었다. 두 팔을 펼치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경외감이 밀려들었다. 소금과 빛의 파노라마 속에서 우유니가 말했다. “그대 은혜 입은 순례자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세요!”
모든 피조물들 위로 창조의 빛이 더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