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 여행기 3] 일본에 울려 퍼지는 풍금소리 3_박병화 목사

0
130

일본에 울려 퍼지는 풍금소리 3

 

박병화 목사(부천 상동21세기교회 증경총회장)

11월 30일(수)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나서 일본선교여행기를 작성한 후 호텔에서 조식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8시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50분을 달려서 리츠린(栗林)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허태성 선교사님의 따님이 외손자와 함께 나와 있었다. 사위는 장덕만 목사님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장덕만 목사님하고 허태성 선교사님은 사돈지간이다. 장덕만 목사님의 아들이 허태성 선교사님이 시무하셨던 강변교회에 유치부 담당교역자로 왔다가 당시 유치부교사이었던 허태성 목사님의 따님과 서로 마음에 들어 교제를 시작한지 두 달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츠린공원은 1625년 당시 영주였던 이코마 다카토시공이 시운산을 배경으로 연못일대를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1875년 현립(県立)공원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고, 1953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이 23만평이나 되는데,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일본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정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코쿠(四国)는 5월 중순 이후와 11월 중순 이후가 관광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8월 같은 경우는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해서 관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2시간 동안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을 산책하면서 정원내에 있는 찻집에 들러 종업원이 일러주는 대로 일본 전통차를 일본식으로 마셔보는 전통문화를 경험했다.

일본에는 약 70,000개의 저수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허태성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카가와현은 일본의 47개 토도부현(都道府県) 중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현이면서 동시에 일본에서 연중 강우량이 가장 적은 곳이라서 저수지가 16,000개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큰 저수지는 만노이케(満濃池)인데 유네스코 관개시설 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만노이케는 만노교회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어, 허선교사 부부는 자주 이곳에 와서 산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8,000여 개의 개신교회가 있는데 그중에 1,000여 개의 교회가 교역자가 없는 “무목(無牧)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한국인 목회자들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인 선교사가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면 교회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일이 곳곳에서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허태성 선교사님은 만노(満濃)그리스도교회의 주임목사이다. 한국에서는 강변교회 목회를 마무리하고 합신총회세계선교회(HIS)와 강변교회가  공동으로 파송한 선교사이다.

허태성 선교사님은 1980년 8월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 참석하던 중 마지막 날 밤에 김준곤 목사님이  10만 명의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헌신하라고 초청할 때,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교사가 되겠노라고 서원하였는데 그로부터 42년 후에 일본장로교회 소속의 일본인 교회인 만노그리스도교회의 주임목사로 청빙을 받은 것이다. 한편, 허 선교사는 공주 금강교회를 개척하여 5년, 은곡교회에서 담임으로 8년, 그리고 강변교회에서 14년(부목사 5년 포함)년간 사역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HIS의 부이사장으로 섬기던 중에 부르심을 받아 선교사로 오신 것이다.

타카마츠항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 우리 일행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산책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허태성 선교사님이 시무하시는 만노교회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E-WON이라는 쇼핑몰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셨다. 허선교사님이 일본 콤비니(편의점)의 아메리카노 커피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해서 콤비니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따님이 손님들에게 어떻게 콤비니 커피를 대접하느냐고 하는 바람에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역시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차이인 것 같다. 한국에서도 60이 넘으면 많은 분들이 코리안 커피인 믹스커피를 잊지 못하듯이 60대 중반을 넘어가는 허선교사님과 30대 따님과의 입맛과 시각과 생각의 차이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목회자 정년이 없다. 건강이 허락되는 대로 목회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란다. 한국도 대형교회나 도시교회야 그렇지 않겠지만 지방교회나 농어촌교회도 조만간 이런 상황이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물론 목회자 정년문제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여겨진다. 한국의 신학교마다 미달이고 젊은이들이 신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문제이니 말이다.

오후 3시, 만노교회에 도착하자마자 “한일크리스천공동예배”가 시작되었다. 허태성 선교사님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는 총회서기 허성철 목사님의 대표기도를 드렸다. 이어서 총회 총무 정성엽 목사님이 사도행전 6:8-15을 한국어로, 허선교사님의 아내인 김진 선교사님이 일본어로 봉독한 후에 사모님들이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특송 후에 총회장 김만형 목사님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간증을 곁들인 격려사를 하였다. 만노교회의 우에다 장로가 환영사를 한 후에 84세인 하타(畑) 목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하타 목사님은 카가와현의 부지사까지 지낸 분으로서 60이 넘어서 동경 근처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한 후에 일본장로교회 목사가 되어 타카마츠그리스도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있으며 현재 서부노회의 서기로 봉사하고 있다. 예배는 당초의 예정 시간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교인들은 끝까지 남아서 은혜의 교제를 나누었다. 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만노교회는 2002년 4월 카와모토 장로가 운영하는 북도건설 회사 2층 강당에서 개척을 사모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담임교역자도 없는 가운데 35명까지 모이는 교회로 발전하여 2004년 9월에 만노그리스도교회가 설립되었다. 2005년 일본장로교회에 목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한 결과 나카무라 목사님이 파송되어 2006년에는 일본장로교회에 정식으로 가입하였고 현재의 교회당을 건축하였으며, 2011년에 목사관을 건축하였고 2017년에는 교회묘지까지 구입함으로써 모든 것이 갖추어진 교회이다. 이 교회에 2022년 4월 허태성 선교사가 제 3대 목사로 부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만노교회에 2007년 2월에 현 합신의 총장인 김학유 교수님의 인솔로 합신의 쁘라뗄리 중창단이 만노교회를  방문하여 콘서트를 개최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당시에 지역신문에서 기사로 보도한 것은 물론 NHK 방송에서 영상을 찍어가서 방영했다고 한다.

만노교회는 주일예배에 15명 정도 모이는데, 이는 일본장로교회들 중에서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교세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교회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서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현재 한국교회의 70%가 주일학교가 없고 대학교 복음화가 3%라고 하니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 나는 프랑스를 방문하여 동문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그 때 합신 동문들과 함께 보내며 정정용선교사로부터 프랑스의 영적상황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계속해서 합신 동문들의 교회 소식을 들으면서 그 감정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동남아 선교에만 집중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화자찬의 노래만 반복하여 부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유럽선교가 얼마나 시급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합신 동문들이 유럽교회에 청빙을 받아 목회를 하며 합신총회에 속한 교회가 되었는데 후임자로 합신동문이 오지 않고 부득불 타교단의 목회자가 오게 됨으로써 합신의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꼭 합신을 나와야만 합신 동문이 아니라 우리 교단에서 인정하는 유럽의 개혁신학교를 나오고 한국에 와서 합신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가 없다면, 온라인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또는 계절 목회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합신의 목사가 되는 길은 없을까? 합신의 문을 넓히지 않고서는 우리 교단의 확장이나 유럽복음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기에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고 그 길은 요원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미 고신은 유럽총회는 물론 미주총회가 있어서 동문들과 유대관계는 물론 목회자들 간에 서로 격려하며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고신동문들이 동역하며 목사 안수를 주는 방식으로 해외 교단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일본에 와서 보니 이 열악한 가운데서 분투노력을 하는 일본선교사님들을 보면서 합신 일본선교사님들을 하나로 묶어 주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총회는 물론 HIS, 특히 HIS 일본지부 후원이사회의 헌신이 요구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남아시아 지부 후원이사장으로서 인도와 방글라데시 선교사 가족수련회를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 개최하여 섬겨보면서 선교사 가족수련회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합신 유럽동문가족 수련회에 참석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 우리는 유네스코에 오른 저수지 만노이케를 향했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서 어두움 속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15분을 더 이동하여 다카라다노사이다에 있는 온천에 들어갔다. 물이 매끈매끈 했다. 그런데 온천이용료가 5,000원밖에 안 한다. 온천은 하나님이 일본에 주신 많은 선물 중에 하나이다. 물론 온천수가 뜨겁지 않아서 약간 덥히는 온천도 많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그동안 피곤을 풀 겸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일본 사람들은 난방이 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통하여 추위를 이기고 건강과 피로 회복을 한다고 한다. 온천욕을 하고 우리는 온천에 있는 식당에서 우동과 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음식 값도 싸고 깔끔하고 우리 입맛에도 딱 맞다. 대부분이 우동 국물까지 깔끔히 비운 것을 보니 면이나 국물이 얼마나 우리 입맛에 맞고 맛있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 밀농사를 지어 만든 면이니 수입하여 만든 우리나라 밀가루 음식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 농사한 밀로 만든 빵과 밀가루 면의 맛은 얼마나 쫄깃쫄깃하고 맛이 있는지 중국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수 더 맛깔스럽다. 우리는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걸었고 만노교회에서 받은 은혜와 온천의 따스한 열기 덕분에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