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바삐 살다가 문득
무기력한 날이 오지
눈물 슬쩍 고이는 날
그런 날엔 땅끝 바닷가에 앉아
전도서를 종일 묵상하고 싶다
한 절 한 절 차가운 물결로 받아
사무치게 헛되고 헛되다고
흐린 섬들에게 철썩이고 싶다
세월이 무늬진 갯돌 속에 오가는
숱한 배와 바람과 사람들
행성과 항성의 숨가쁜 궤적 아래
색 바랜 무지개를 꽉 붙들고
발바닥 헐도록 지구를 굴리는
우린 어디만큼 왔고 어디로 흐를까
문명도 지쳐 슬그머니 찾아와
눈시울 적시는 땅끝에서는
움켜쥘 아무 것도 없어 다 내려놓고
하늘을 우러르며 묵묵히
노을 묻은 새처럼 돌아온 적 있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