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총회40주년기념 칼럼] 복음의 공공성과 하나님나라 신학_강경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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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공공성과 하나님나라 신학

강경민 목사(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복음의 공공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가 함께 작동한다

합신교단은 오직 개혁을 위해 탄생했다. 합신이 지향하는 개혁은 교회 개혁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포괄한다.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의 지향성이요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신의 개혁성은 일방적으로 교회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교회의 타락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 때문에 교회 분열이라는 비판과 아픔을 안고 시작했으니 출범 초기 교회 개혁에 초점을 맞춰 질주했던 것은 어쩌면 역사적 한계였을 것이다.

과연 교회 개혁에 대해서는 일정한 영향력이 있었다. 합신 교단 소속 교회들이 사회적으로 도덕적 비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별히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던 총회장 선거가 얼룩진 돈 선거로부터 투명했다는 것은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만한 쾌거였다. 다만 지난 십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청렴성의 기준이 된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교단이 보여준 신학적 입장과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교회 세습이 신학적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간단하다.

폐일언하고 기득권이 세습되기 때문이고 전임자의 목회적 전횡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의 목회적 고난을 유업으로 계승하여 교회 바로 세우기에 헌신한다면 세습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세상의 눈으로 보아도 그런 일은 오히려 칭송의 대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 교단 안에도 부모의 목회를 이어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득권 세습인지 고난을 유업으로 받은 것인지는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알 것이다.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와 사회를 엄밀하게 나누어 이야기하는 이원론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먼 이야기라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사회)안에 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교회가 빛을 발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필연이므로 교회는 세상에 대해 책임적 존재이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는 뜻은 교회가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이 다양화 되었으니 다양한 세상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그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여서는 안 된다. 다양성 속의 일치! 그게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세상이 나아가야 할 보편타당한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무지해서는 안 된다. 끝없는 탐욕이 인간사회를 지배한다 해도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리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고비 고비마다 필요한 그 길을 개혁이라 말한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바로 그 길이 보인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그리스도인이든지 비그리스도인이든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진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만을 위한 진리 체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 계시를 교회가 아닌 세상의 언어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교회보다 광범위한 하나님나라 신학을 만난다. 하나님나라 신학은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을 동시에 내포하므로 타락 이후에 발생한 구원신학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물론 구원 없는 종말론적 하나님나라는 없다. 한국교회가 언제 성경 신학적 종말론을 절실하게 가르쳤는가? 한국교회의 종말신학에는 개인적 죽음 외에 성경적 종말 신학이 없다. 예수님의 재림과 재림 이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 거의 없다.

성경적 종말론이 역사와 만나면 필연적으로 끊임없는 개혁의 에너지가 된다. 확실히 다가올 그날의 영광을 오늘, 여기서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합신 신학의 기반은 하나님나라 신학이었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yet)의 긴장 속에 오늘, 여기서 하나님나라를 구현해 가는 삶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력이 하나님나라 신학의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이 사회개혁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합신이 말하는 하나님나라 신학은 오늘의 삶에 대한 종말론적 긴장이 약하다. 오늘, 여기서 살아내야 할 그 나라에 대한 비전이 약하는 말이다.

개인 윤리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죽어서 갈 그 나라에만 모든 기운을 소진 시켰기 때문일까? 신학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오늘날 하나님나라 신학의 실천적 과제는 복음의 공공성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다. 복음의 공공성은 복음화의 결과가 교회나 사회에 모두(함께)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면 교회와 NGO와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교회가 NGO 역할만 감당하다가 약화되거나 소멸하게 된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공공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가 함께 작동한다. 거기에는 신비주의가 아닌 신비가 넘친다. 거기서 교회의 생명력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사회변혁의 역동성이 솟아난다. 합신이 사회정의와 공의를 주장하면 세상이 춤을 출 것이다. 박윤선이 주창한 계시의존사색(신학)은 옛 신학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주어진 계시를 통해 오늘 여기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끝없이 찾아가는 작업이다. 그 일을 위해 신학자들이 선봉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