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부활신앙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부활신앙은 구약 성도들의 의식과 삶의 밑바탕에 내재해 있었다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사신 부활절이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다(롬 1:4).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죽음의 권세에 매여 있는 인류에게 부활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곡식의 첫 열매가 연이어 무르익을 수많은 열매들을 예고하듯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인류가 참여할 부활을 알리는 기쁨의 첫 소식이다(고전 15:20). 이것을 아는 교회와 성도들은 부활절을 맞이하며 승리의 기쁜 노래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를 외쳐 부른다.
죽음이 인류의 마지막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구약에서 예고되었다. 구약은 죽음이 인류의 원래운명이 아니라 죄의 결과라고 가르친다(창 2:17; 3:17-19).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되면 죽음이 극복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구약은 장차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될 일을 내다보며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분명한 방식으로 그것을 예고한다. 에녹과 엘리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구약에서 이 두 사람은 죽음을 겪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창세기 5:24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밝힌다. 또한 열왕기하 2:1-11은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신]” 일을 소개한다. 이 두 사건은 인간에게 죽음이 필연적 운명이 아님을 예시한다. 죽음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인간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의 권세가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장차 그리스도로 인해 일어날 죽음의 결정적 패배를 예고한다.
구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한번은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와의 명령을 받들어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행한다. 그것은 물론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으로 일어난 일이었다(왕상 17:21-22). 다른 한번은 선지자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일이다. 스승인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엘리사도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는]” 특별한 행위를 한다(왕하 4:35). 성경신학자 왈리스(R. S. Wallace)가 잘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선지자가 자신과 아이를 동일시하여 아이의 저주와 질병을 자신이 직접 취하고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아이에게 불어넣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 행위였다.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위는 사실상 선지자 중의 선지자신 예수께서 하실 일을 지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위에 드리운 질병과 죽음을 직접 취하셨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해 주셨다.
실로 부활신앙은 구약 성도들의 의식과 삶의 밑바탕에 내재해 있었다. 매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그것을 대변해준다. 주변민족들에게도 매장은 중요한 것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독특한 면은 사후세계에 대한 미신적인 불안이나 기대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굳은 신뢰와 확신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족장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자 충분한 값을 지불하고 매장지를 구입하였다(창 23:16-20). 주석가 메튜스(K. A. Mathews)의 설명처럼, 아브라함의 행위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다. 매장과 하나님의 약속과의 관련성은 요셉의 유언에도 잘 나타난다. 요셉은 애굽에서 임종을 맞이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내다보았다. 이 믿음 안에서 요셉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창 50:25)고 당부하였다.
요컨대, 족장사에 기록된 내용은 죽음과 매장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과 함께 갔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신앙은 쇠하거나 시들지 않았다. 죽음 너머에 계시며 죽음의 권세조차 다스리시는 한 분 하나님, 그분에 대한 굳은 신앙이 구약성도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했다. 구약 성도들은 인간의 마음과 육체가 무너지는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반석을 발견하였다. 시편 73편의 한 구절은 이런 구약 신앙의 정수를 잘 대변한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6절).
구약 성도들의 신앙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현실화되었다. 믿음은 과연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사망에 대한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에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사실 이 승리의 노래는 구약 호세아 선지자로 소급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심판과 회복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사망아 내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호 13:14)고 하며 죽음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에스겔 선지자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에 대해 말씀한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겔 37:12).
선지자 호세아와 에스겔의 예언은 사실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이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 “새 인류”(엡 2:14, 개역개정역에는 “새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 공동체 곧 교회이다. 따라서 호세아와 에스겔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내다본다고 말할 수 있다. 호세아와 에스겔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예수님과 그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을 예언한 선지자는 이사야와 다니엘이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 25:10; 26:19 참조);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구약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도 “반석”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하나님, 선지자들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장차 있을 회복과 부활을 알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마침내 자신의 뜻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죽음을 무력화시키고 생명을 드러내셨다.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첫 열매”에 뒤따라 맺히는 수많은 열매들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을 맞을 날을 기다린다. 부활절은 이것을 기억하며 승리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날이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