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손
그 겨울,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렸네. 졸아든 북어포, 흐린 핏줄의 샛강을 따라 한 세기를 건너온 살갗의 흰 눈이 목숨을 버리고 있었네.
아득한 날부터 개펄과 황토와 신 김치와 가마솥과 장독들, 군불과 그을음과 땡볕과 비바람과 눈보라의 친구였고 내 눈곱, 눈물, 콧물, 뒤까지 닦아 주던 손. 팡이 슬어 탈색된 기억의 옹이마저 까맣게 탄화된 그것은 할머니의 일생이었네.
티브이에는 남몰래 이웃을 돕는 손들.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도 보였네. 불현 내 손이 오그라들었네. 다른 이들을 파멸시킨 손, 양심을 유기해 버린 손, 뒷거래를 한 손들, 송곳보다 칼보다 예리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폭언과 증오를 뱉어 상처를 헤집는 손들도 번뜩였네. 내 손이 몹시 떨렸네.
새해 첫새벽, 말없이 손바닥을 들여다보네. 이 작은 도구도 팡이 꽃이 필 때까지 할머니의 손, 그 반의반만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젖고 마르고 정직하게 쇠해 간다면 손바닥에 스미는 안개 묻은 햇살의 숨소리를 등불처럼 넉넉히 받아들 수 있을 텐데.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