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생수의 강물
< 임종태 집사, 대림교회 >
“우리 인생은 하나님 향해 진행되도록 인도받고 있어”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8월에 전교인 여름 수련회를 가졌다. 그곳은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시원한 바람과 두엄 냄새와 각종 꽃향기가 덤으로 돌담을 넘어 고샅에 깔려있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이다.
유초등부와 중고등부에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를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 되게 하는 천국잔치였다. 수련회는 로마서 8장 ‘성령님으로 살리라’는 주제 말씀과 기도와 즐거운 게임(줄넘기, 달리기, 보물찾기 등)으로 진행되었다.
수련회가 진행될수록 성령님 임재를 체험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께로 확실히 돌아오는 기쁨을, 또 다른 성도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 은혜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담임목사님은 일반적 원리를 전제로 하여 특수한 다른 원리를 이끌어 내는 연역적 방법보다 개개의 구체적 사실에서 보편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는 귀납적 방법을 좋아하신다. 말씀이 정곡(正鵠)을 찌른다. 쉐마로 다가온다. 목사님의 입술을 통하여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친다. 모든 성도가 말씀으로 일곱 번 씻어(왕하 5:10) 모든 것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됨을 체험하는 참으로 멋지고 은혜가 풍성한 수련회였다.
중고등부 어린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약간은 진력(盡力)이 날 수도 있을 법한데 눈빛이 목사님의 얼굴을 구멍이라도 뚫어지게 응시한다. 성령님의 도움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대나무가 단 한그루도 없는 독도를 죽도라고 우기며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을 연상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큰 복인가를 다시 한번 느껴본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고전 1:26). 하나님은 완벽한 인간을 찾으시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굳이 조건을 붙인다면 겸손한 자를 택하신다.
큰 꿈을 이루려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붙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왕이 될 운명에 처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양들을 돌보는 목동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사자도 물리치고서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알았다(삼상 17:47).
모든 것의 주관자는 주님이시다. 하루하루를 기도드리며 성실하게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된다. 환난이 오고 실패하더라도 신앙의 인격 만큼은 변치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전무, 전멸의 상태로 몰고갈 때에도 우리의 삶이 곤경에 빠뜨려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 106:8) 우리 삶을 하나님에게로 향하도록 방향을 바꾸어 주신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줄 어떤 사람이 필요할 때 하나님은 끝까지 들어주시는 은신처가 되어주신다. 이미 다른 무엇인가로 가득한 우리의 손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부어주실 수 없다.
잠이 덜 깬 유초등부 아이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세 높으신 권사님들은 넓은 통바지에 최고로 편한 자세로 열심히 말씀을 듣는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접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다. 노모(老母)의 가슴팍처럼 우리 교회는 외형적 규모에서는 빈약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챙이 숟가락같이 끝까지 사명을 다하는 성도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부흥되고 빛과 소금의 담당자가 될 것을 확신해 본다.
말씀을 듣는 어린 꽃들이 활짝 피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나 그저 감사하고 또한 기대가 된다.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는 어린 묘목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돌아왔을 때 입을 벌리고 받아먹으려고 전력을 다하는 어린 벌거숭이들을 보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며 영원하고 높음을 볼 수 있다(사 55:8-9). 우리 삶의 가만한 바람이 하나님과 연결되면 기적의 바람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싶다.
우리들의 편벽스러운 생각을 사랑의 용광로에 넣는다면 용서와 화해의 큰 바다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오늘따라 목사님의 얼굴과 마음이 무척이나 살갑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