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의 사역을 돌아보며_김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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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보고서

12년의 사역을 돌아보며

김요한 선교사·T국

“후배선교사들이 더 많이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고대해”

총회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선교지로 떠난 지 어언 12년, 엊그제 파송예배를 
드리고 떠난 것 같은데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12년이란 사역 속에
서 제대로 쉼을 갖지 못하다가 이제야 일 년이라는 안식년을 갖게 되어 그 
동안의 사역을 정리하며 나누고자한다.

선교 사역 12년 돌아보게 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는 말씀처럼 필자의 사역은 “믿음을 키우고 인내를 배
운 기간”이였다고 할 수 있다. 12년 동안 사역을 하고 보니 이제야 선교사
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12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길을 경험하였다. 때
로는 고난으로, 때로는 위기상황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때로는 위로와 보호하
심으로 주님은 철저하게 우리 부부를 연
단하셨다. 주님은 선교지에 자신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선교사에게 먼저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다루신다. 
그런 면에서 필자를 비롯한 모든 선교사들은 기뻐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슬렘권 선교가 어렵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곳으
로 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 결코 쉽지 않은 지역이고 쉽지 않은 사역
이다. 그렇기에 모슬렘권 선교는 더욱더 가치가 있고 존귀하고 의미가 있다
고 생각한다. 
힘이 들고 열매가 쉽게 보이지 않고 위협이 늘 존재하는 그런 환경이지만 포
기하지 않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선교, 이 일에 충성하며 질주
할 때 주께서 마지막 날에 칭찬해 주시리라 확신한다.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1996년 11월, 대학 때부터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준비해왔던 선교지 T국에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첫발을 내 디뎠다. 그때 평생에 필자와 동일한 
열정을 가진 현지 지도자 1-2명만 세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인구의 99%가 모슬렘인 T국 땅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
었지만 언어를 배우면서 개척을 시작했다. 필자는 사람을 모으는 선
교사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선교사로서 살기로 결심하고 제자화 사역에 초
점을 맞추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T국의 수도인 A지역에서 첫 번째 교회개척사역이 시작되었다. 다른 선교단
체 소속 선교사와 함께 서로의 집을 오가며 시작한 교회가 지금은 현지인 목
회자에게 넘겨져 잘 성장하고 있다. 그 때 초년병 선교사였지만 모슬렘권 교
회개척에 대한 가능성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1년 후 I도시로 이사하여 교회개척을 시작하였다. 한국이 IMF를 당한 1998년
도에 대부분의 사역에 제동이 걸렸을 때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
음으로 희생으로 한다고 다짐하며 I도시의 M지역으로 이사하여 교회개척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 거실에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앉혀놓고 시작한 M교회가 지금은 약 35명
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
지 않을 수 없다. 

핍박가운데서도 교회 개척 이뤄

교회개척을 시작한지 8개월 동안 전도를 열심히 해도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
고 오히려 핍박과 협박을 당하여 낙심했을 때 한 영혼을 붙여주셨던 일. 
85만 명이 사는 
M지역의 지도를 붙여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이틀씩 
7-8개의 골목을 선정하여 돌며 각 아파트나 집 문 앞에서 아내와 함께 기도
했을 때 감당할 수 있도록 힘주셨던 일. 
8개월만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자매를 중심으로 사무실을 얻어 예배를 드
리던 일. 
교회로 사용하던 사무실 위층에 민족주의 정당 사무실이 있어서 위험하다며 
모든 선교사들이 이사할 것을 요청했을 때 마땅히 이사를 할 만한 재정이 없
어서 우리가 아닌 그들이 이사 가도록 기도하자 민족주의 정당이 이사 가던 
일. 
귀신들린 형제, 자매들을 붙여주셔서 기도훈련을 시키시고 친히 주께서 그들
을 치료해 주신 일. 
기도할 때마다 주께서 정하신 때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신 일. 
핍박을 피해 예배처소를 옮길 때마다 가장 적절한 곳으로 인도해 주신 일 등
등. 이 외에도 주께서 베푸신 은혜는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때마다 일마다 주님 손길 느껴

그러나 개척사역이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2년 동안 하나님께서 
저희를 연단하셔서 정금과 같이 뽑아내시려고 고통의 시간들도 허락하셨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세례까지 받았던 자매가 
예수를 믿으면 교회에서 
자기에게 어떤 것이 오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불만을 품고 
저희를 경찰에 고발하였다. 그래서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두 번에 걸
친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항소심에도 
패소하여 벌금형을 받았다. 
2004년도 말에는 첫 교인이자 전도인으로 임명한 자매를 치리할 수밖에 없
는 아픔을 겪었다. 교회에서 목회자로 키우려고 했던 유부남 형제와 간음죄
를 지은 것이 발견되어 수차래 권면하였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간음죄에 
대해 자신들은 동의할 수 없다고 하여 교회 회의를 거쳐 출교를 선언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은 출교당한 그 두 사람의 거짓말에 
속아 모두 다 떠나고 말았다. 개척 7년 만에 교회가 문을 닫게 되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교회가 무너질 수 있는지 새
벽마다 주님께 나아갔지만 기도보다는 한탄과 눈물만이 가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너무나 충격이 컸던지 어느 날 새벽 심한 복통으로 응
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 초보 당직 의사 한사람만 있는 응급실에서 치료
도 못 받고 
진통제 주사도 듣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와 주께 치료를 간구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위장이 심하게 망가져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 
주님 앞에서 사역을 정리하고 싶다고 괴로워하며 절망했을 때 주님은 다시 
시작할 것을 요구하셨다. 참으로 주님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섭섭하게 느껴
진 적도 없는 것 같다. 주님은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하며 교회를 정결
케 한 다음에 진정한 부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정결한 교회만이 부흥 일궈내

2005년 1월 그동안의 개척사역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개척을 시
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M교회는 2005년도에 새롭게 개척을 한 것이나 다름
이 없게 되었다. 
낙심한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2005년
도 7월에 이번에는 M지역 군수가 다시 교회가 불법이라고 지방 법원에 고발
을 한 것이다. 필자와 교인들은 고발 당한 지도 모른 상태였기에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6년 2월에 지방법원은 결석 재판 진행하여 필
자와 교인들이 현 주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r
두 번씩이나 필자에게 패소를 선언했던 그 법원에서 동일한 판사가 이번에
는 필자와 현지 교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되어질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몸이요 피값으로 산 M
교회를 정결케 하신 다음 새로운 그릇에 새로운 사람들을 담아주시기 시작하
셨다. 2007년을 기점으로 가족 단위로 예수를 진심으로 믿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2장 47절의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는 말씀처럼 주께서 믿기로 작정하고 결심한 숨겨놓았던 보석 같은 사람들
을 보내주신 것이다. 지금은 약 35명의 교인이 모여서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
며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동역자에 대한 것이다. 교회 개척을 시작하면
서 지금까지 목회자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해 왔건만 소식이 없어 12년
이 넘도록 안식년을 못하게 된 것이다. 
M지역이 
척박하고 아주 보수적이기에 어려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동안 기도하며 선교편지에 알리며 T국 M교회 개척사역을 위해 동역
할 목회자 선교사 가정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다. 현재 이랜드에서 근무하
다 개인 사업을 하던 사랑하는 제자 부부가 도전을 받고 터키로 와서 언어
를 배우며 교회개척사역을 돕고 있다. 
지난해에는 오지 않는 목회자 선교사 가정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출신 평신
도 선교사 가정을 맞이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 어느 한국 목회자 선교
사보다도 더 구령의 열정이 있고 더 헌신적이며 현지 언어 또한 7년 동안 
잘 준비한 선교사였다. 
어려운 지역에서 현지인 교회개척사역을 돕게 해 달라고 2년 동안 기도해 왔
다고 한다. 이들이 있었기에 아픈 몸을 치료하고 영육 간에 쉼을 얻을 수 있
는 일 년간의 안식년을 12년 만에 얻게 된 것이다. 
모슬렘 권에서의 교회개척사역은 혼자 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서 함께 
기도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고 그렇게 시작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 확신한
다. 사람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긴 세월을 오직 유일한 동역자인 아내를 
벗삼아 달려온 길이 왠
지 서글퍼진다. 
최근에 마음 한구석에 찾아드는 이상한 생각이 있다. 요즘 선교사들은 고생
과 희생하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들어 온 이런 생
각이 잘못되었기를 내심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고생과 희생의 연속인 선교사의 길 

안식년을 가지면서 이런 소망을 가져본다. 사랑하는 후배들이 총회선교사로 
교회개척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헌신해주기를 말이다. 이제는 교단 선교부
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행정이나 캐어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
어지지 않아 총회 선교사로 헌신하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12년이 넘도록 오직 총회단독 소속선교사로서만 
사역을 해왔다. 그 이유는 터키 모슬렘권 사역에 합신 총회가 교두보를 확보
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후배들이 진출하게 될 수 있기를 소망했기 때문이
다. 
이제는 총회선교부가 많이 달라졌다고 확신한다. 안식년을 가지면서 더욱 
더 피부로 절감한다. 어느 선교단체 못지 않은 전략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고 생각한다. 
이제 21세기 T국 모슬렘권 선교에 우리 합신 총회소속의 헌신된 후배 선교사
들이 더 
많이 진출해주기를 소망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