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쁨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총무 >
“하늘의 기쁨은 돌밭을 고르는 자나 거두는 자나 함께 누릴 수 있어”
현대인들이 점점 잊고, 아니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중 하나가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척박한 환경과 긴장 속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들이 사역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이거나 환경적으로 열악하고, 선교를 방해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사역의 진전이 생각처럼 빠르지 못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에 협력교회들의 후원이 점점 줄어들고, 자녀들 교육비는 날로 늘어가니 기쁠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것을 선물로 받았을 때, 꼭 배우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주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때 우리는 반가워하고 기뻐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기쁨들이 우리 주위에 많은데 과연 참된 기쁨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쁨이 스스로의 선택이나 지혜에서 온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온전한 설명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기쁨을 ‘마음이 즐거운 상태, 또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은 존재 안에서 의미를 찾는 종교나 철학 체계에 있어서는 ‘기쁨’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기쁨은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체험이며, 그것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급작스레 끝나버리는 ‘절정의 체험’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 생산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수반되는 정서의 상태라고 한다. 기쁨이란 몰아(沒我)의 경지, 순간의 ‘불꽃’이 아니고 존재에 내재하는 ‘불씨’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기뻐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급변하는 이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 그리고 견디기 힘든 현실을 바라보며 기쁨을 계속 유지하고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원천인 하나님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선교사들에게는 특별한 기쁨이 있다. 누구에게나 전도의 열매는 귀하고 소중하지만 선교지에서 얻는 영혼의 열매는 얼마나 큰 기쁨과 힘이 되는지 모른다.
요즈음 아내는 매일매일 기쁨 속에서 살고 있다. 선교지에서 만나 전도한 자매를 한국으로 초대하여 같이 지내며 이곳저곳 구경도 시키고,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 옆에 있는 사람도 저절로 미소가 생기며 기쁨이 넘친다.
진정한 기쁨은 사랑할 때 생겨나며, 손익계산이 없는 곳에서 생겨나며, 하나님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그분의 사랑을 나눌 때 생겨난다. 동기 목사 한 분이 그 자매와 함께 우리 부부를 봄이 한창인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했다. 정성을 다해 섬기시는 그 모습 속에서도 기쁨이 있음을 보았고, 또한 그 기쁨 역시 전파되어 옴을 느꼈다. 기쁨은 본인뿐 아니라 옆 사람에게도 행복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이 주셨던 감사의 기쁨이 점점 커지고 넓어진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사랑하고 사모하는 영적 자녀와 형제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며(빌 4:1) 기쁨의 서신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 있는 선교사들이 생명의 열매들을 얻고, 그 열매들이 장성함에 이르도록 도우며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를 늘 기도한다. 비록 아직 열매가 없어 황무지의 돌밭을 고르는 일을 하고 있어도 하늘나라 확장과 열매를 기대하며 늘 기쁨의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늘나라의 기쁨은 돌밭을 고르는 자나 거두는 자나 함께 참여한 모두가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언어를 배우는 일도 기쁨으로, 비자 문제 때문에 수시로 이웃 나라를 드나드는 일도 기쁨으로, 아이들 교육문제를 생각하면서도 기쁨으로 해야 한다. 그럴 때 옆에서 지켜보는 선교 현지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