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쓰는 사랑의 편지
< 김수영 목사, 남서울나눔교회 >
“목사에게 있어 성도들 한분 한분은 너무 소중합니다”
7월 22일 목요일 4시, 극동 방송국 프로그램 ‘목사님의 러브레터’에 성도 다섯 분과 출연하였습니다. 교회의 자랑거리, 개척 이야기, 성도들의 목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목사의 사랑 고백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핵심은 목사가 자기 교회 성도들을 향해 읽어주는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그 글을 준비하면서 이런 사랑의 편지를 가끔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설교 시간에 읽어줄 수도 있고, 혹은 칼럼에 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로고스’(말씀)는 분명 꼭 전달되어야 할 진리이지만, ‘파토스’(마음, 감정, 정서)의 움직임 없이는 힘이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마음과 마음이 와 닿는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경험하고 또 경험합니다. 한 번 왔다 가는 강사야 그럴 필요가 없지만, 계속 말씀을 먹이고 돌보아야 하는 목자와 양떼 사이에서는 정서적 교감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목사의 ‘파토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설교입니다. 설교 안에서 목사의 사랑을 때로는 듬직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은은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성도들은 설교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 방송국에서 읽었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읽을 때 더 감동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사랑 고백>
어떤 친척보다 나눔 교회 식구들을 더 자주 만납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수요 말씀 공부에서, 금요기도회에서, 그리고 주일에 계속 봅니다. 직장에서 일로 만나는 사람을 제외하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을 이렇게 자주 볼 수 있을까요? 전혀 피가 섞이지도 않았고, 자기 이익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특별히 주일 예배 시간에 우리 성도들을 보고 있노라면 반가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대개 성도들이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편인데, 그 자리가 비어있으면 금세 궁금해집니다. 말씀을 전하면서도 빈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목사가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왜 빠졌을까?’ 하며 궁금해 하는 사랑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섞여서 놀고 있어도 엄마는 자기 아이의 울음소리를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뛰어갑니다. 엄마와 자식만이 갖는 끈끈한 관계 때문입니다. 김 목사에게 나눔 교회 식구들은 그와 같습니다.
성도의 얼굴이 펴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가?’ 하며 묻습니다. 활짝 펴 있으면 같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파 보이면 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가슴으로 묻어오는 전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은 ‘파토스’라고 합니다.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눈빛으로 알고, 얼굴빛으로 공감하고, 표현된 말의 내면을 들으며 하나 됨을 느낍니다. 나눔 교회 식구들과 같이 한 식구가 되어서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전혀 알 수 없었을 텐데, 집안 식구들보다 더 마음에 두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하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개척을 한지 8년 동안 같이 동행해주신 식구들뿐 아니라, 바로 지난주에 등록한 식구들도 오래 알아온 느낌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들이 만날 운명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그렇게 한 식구가 되도록 해주셨기 때문에 처음 식구가 된 분들도 오래 안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제 목양지의 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같이 부족한 목자에게 양떼를 맡기고 잘 돌보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나눔 식구 한분 한분은 너무 소중한 분들입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돌봐야 할 주님의 양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아서 같이 한 무리가 되어서 주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매주 새로운 양들을 보내주시고 돌볼 수 있게 해주시고 교제하게 해주시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나눔 교우들은 저의 사랑입니다. 저의 기쁨입니다. 저의 눈물입니다. 저의 땀입니다. 그리고 저의 심장이요 호흡입니다. 교우들이 있음으로 제가 행복하고, 저의 목회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