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입간판을 세우려다…
박종훈 목사/궁산교회
활뫼에 정착한 지도 어언 열 두 해가 되었다. 그동안 자리잡고 건축하며 복
음을 전하며 살아온 날들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오던 해에 같이 심
었던 나무들의 모습 속에서 지내온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작년 겨울부터
꽃피는 봄이 오면 시행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다. 심심찮게 찾아오는 방문객
들을 위해 국도 변에 교회당 간판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이왕이면 보기 좋고 눈에 잘 들어오는 위치에다, 정원에 피는 꽃의 모습을
담은 광고판을 세우기 위해 전문 업소에 견적을 의뢰했다. 여러 조건을 갖추
고 튼튼하면서 눈에 잘 띄는 모양으로 하려고 하니 칠십만 원의 견적이 나왔
다. 우리 교회로서는 큰 부담이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맘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우선 법적인 여건을 알아보았다. 평소 성도들에게 법을 잘 지키는 것
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하고 교회의 모든 행정도 법을 준수하는 것이 가
장 안전하고 빠른 길임을 실천하며 가르쳐
왔었다.
관계 기관에 알아보니 국도 변에는 불가하다고 한다. 간판을 세우고자 하는
제일 좋은 위치는 사실 국도 변이었다. 차선책으로 국도를 벗어난 마을입구
도로에 세우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허락을 받
아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토지 소유자로부터 승인서를 첨부하고 기타
서류를 내야만 허락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군청 민원실에 들려 지적도
와 소유자를 확인하니 개인소유가 아닌 유지로 되어 있었다.
해당 사무실을 방문하여 설명을 하며 간판을 세우도록 허락을 정중히 요구했
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더니 매우 난감한 뜻을 표했다. 불법으로 모른 척 하
고 세울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정식 절차를 밟으면 여러 서류를 구비해야 한
다는 것이다. 즉 임대 계약서를 비롯하여 공식 설계도와 다른 서류가 있어
야 최종 사용 승인서에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간판 세우는 비용보다 훨씬 더 들어가는, 배보
다 배꼽이 더 크게 되는 꼴이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아쉬움을 남기고 이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땅이면 쉽게 해결되는 일이지만 공유지(公有
地)
라서 어렵게 된 것이다. 활뫼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이 조금 불편해도 동네를
알리는 돌 간판이 이미 세워져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바쁜 중에도 며칠 간 시간을 소비하며 돌아다니며 결국 헛수고 한 것 같지
만 나름대로 마음은 뿌듯했다. 불법으로 해도 괜찮다는 유혹에서 승리했고,
또 행정절차에 대해 좀더 아는 지식을 얻게 된 것이 소득이었다.
20여 년 전 고향의 교회당을 건축할 때 불법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
지 않고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생각이 난다. 비록 더디고 안 된다 할지라도 합법적이고 투명하고 정직한 것
이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의 유익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솔직히 모든 법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지만,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지켜야 옳은 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이 편하고 떳떳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