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각 시스템 작동중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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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 시스템 작동중

성주진 교수/합신 구약신학

아픔을 느끼는 감각을 통각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전신에 정교한 통각의 
그물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 통각 시스템은 하나의 경고체계로서 우리 
몸의 이상을 감지해 냅니다. 각양각색의 통증에 따라 초기에 증상을 찾아내
고 적절한 치료를 하도록 경고를 보냅니다.

이와 같이 정상적인 통증은 건강한 몸의 유지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감각
입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통증은 하나님의 ‘실수’처럼 보일 수 있겠
지만, 통각 시스템은 창조의 걸작품이자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기독교 저술가인 필립 얀시는 여기에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경
고 시스템이 고통 없이 작동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아픔이 없이
도 문제를 찾아내서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살짝 알려주기만 주면 우
리가 알아서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대답은 단호합니다. 우리의 몸은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경고에 대해

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적당히 아파야만 대책을 강구하지 그렇
지 않으면 문제를 실감하지도, 반응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한센씨 병이 무
서운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체의 통각 시스템은 구약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선
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는 통각 시스템이었습니다. 선지자들
은 특히 저주(징계)의 사역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질병을 알려주고 치료를 
받도록 경고하였습니다. 때때로 이 경고는 큰 고통을 수반하였습니다. 엘리사
의 사역이 좋은 예입니다.

엘리사가 하루는 벧엘을 지나가는데 그곳 어린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 나와
서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계속 조롱합니다. 이에 선지자가 돌아서서 여호와
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숲에서 암콤이 나와서 42명을 죽입니다(왕하2:23-25). 
선지자가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을 참지 못하고 저주해서 죽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열쇠를 사용하면 엘
리사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벧엘은 당시 이스라엘의 왕도이자 우상숭배의 본산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

n은 자기 부모들, 즉 벧엘의 영적인 분위기를 가장 정직하게 나타내고 있습니
다. 따라서 아이들의 조롱은 온 이스라엘이 선지자와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대머리’는 아마도 선지직의 표지로써, 선지자에 대한 경멸의 뜻을 담고 있
습니다.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다른 데
로 가 버리라는 말로써, 결국 ‘이곳에서 꺼져라. 우리는 당신이 필요 없다’라
는 뜻입니다. 선지자와 함께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
습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저주는 성깔 고약한 사람의 해코지가 아니라 언약에 근거
한 경고요, 처벌의 선언입니다. 선지자는 언약의 정신에 따라 배도하는 백성
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저주를 듣고 사자를 통해서 아이들을 죽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마 아이들은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나이일 수도 있고, 또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습니다. 후자라도 문제는 안됩니다. 이 아이들의 죽음
은 ‘진멸’로써 배
반당하신 하나님이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
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배반함으로써 하나님의 원수가 되
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은 언약공동체의 실상을 밝히 드러내고 아프게 
경고하는 영적 통각 시스템이었습니다.

현대인은 어설픈 행복론을 따라서 정상적인 고통까지도 악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의 경고를 듣지 못합니다. 구원과 치유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련하신 신령한 통각 시스템은 우리의 중생한 양심을 통하
여, 말씀의 진리를 통하여, 성령의 책망을 통하여, 그리고 사역자들과 형제
의 섬김을 통하여 작동중에 있습니다. 

신령한 통각 시스템이 작동중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실제적
인 돌보심의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성도와 교회, 그리고 사회를 아프
게 일깨워 주는 이들의 경고를 배척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는 은혜와 성숙의 확실한 표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