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예정의 이유와 목적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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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예정의 이유와 목적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3장 5항: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며 불변한 목적과, 그리고 그의 뜻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쁨을 따라서, 생명으로 예정이 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그들에게서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 또는 그것들이 끝까지 유지될 것을 미리보시는 일과 상관이 없이, 즉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하도록 하게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들과 같은 다른 어떤 것들을 미리 보지 않은 채, 그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5항이 앞서 3항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예정 가운데 선택과 관련하여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 내용은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진 때와 이유, 그리고 목적 등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진 때와 관련하여 신앙고백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루어진 일임을 진술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실제로 창조하시므로 시간의 역사를 열어 가시기 이전에, 곧 영원 안에서 이미 선택의 예정을 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선택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실현하시고, 타락한 상황을 보시고, 그 후에야 비로소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선택의 구원을 하시기로 시간 역사 안에서 행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선택의 예정은 창조와 타락 등과 같은 사건들의 시간 역사가 시작된 후에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 타락, 구속 등의 시간 역사가 아직 시작이 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 이후의 시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실현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선택의 예정을 이루는 계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이러한 설명이 곧 타락전선택설(supralapsarianism)을 뜻하는 것이 아님에 주의를 하여야 합니다. 소위 타락전선택설과 타락후선택설(infralapsarianism)의 논쟁은 선택의 예정이 시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냐 시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냐의 논쟁이 아닙니다. 종종 시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은 타락전선택설, 시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은 타락후선택설로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타락전선택설이나 타락후선택설이나 모두 시간 이전인 하나님의 영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한 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영원 안에서 작정하시는 대로 시간 안에서 펼쳐 가십니다. 그럴 때 선택의 작정과 관련하여서는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어떠한 논리적 순서를 따라 행하셨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두 견해가 나타날 따름입니다.

 

여기서 타락전선택설은 타락의 작정 이전에 선택의 작정이 먼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을 하며, 타락후선택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는 견해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설명의 순서는 모두 영원과 관련한 것이므로 실제로 시간 역사 안에서 나타나는 아담의 타락 사건 이전이나 혹은 이후의 시간 순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타락후선택설은 선택과 관련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논리적 순서가 시간 역사 안에서 전개되는 실행의 순서와 동일한 것으로 믿는 반면에 타락전선택설은 그 순서가 반대일 것으로 믿는다는 점에서 두 견해는 서로 차이점을 갖습니다. 타락후선택설에 따르면 선택의 대상은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 곧 시간 안에서 실제로 타락이 이루어지는 것과 상관이 없이 – 타락한(lapsus) 존재입니다. 반면에 타락전선택설에 따르면 선택의 대상은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타락할 가능성(labilis)이 있는 존재입니다.

 

대체로 개혁신학의 역사적 신앙고백문서들은 타락후선택설을 따르는 것에 비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뚜렷한 견해를 선택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르트신경은 1장 7항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자유롭고 선한 기쁨의 뜻을 따라서, 그저 순전히 은혜로, 스스로의 잘못으로 타락하여 원래의 순전한 상태에서 죄와 파멸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말았던 인류 전체 가운데 특정한 수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을 하셨습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르트신경의 고백은 선택의 대상을 타락한 인류 가운데 특정한 수의 사람들로 밝힘으로써 타락후선택설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입니다.

 

이와 비교하건데 지금 살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3장 5항은 단지 “생명으로 예정이 된 사람들을”이라는 표현으로 선택의 예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특정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음으로써 타락전선택설과 타락후선택설에 대해 다소 중립적 견해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웨스트민스터신앙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한 총대들의 주류는 타락후선택설을 지지하였지만 총회를 주재하였던 윌리암 트위스(William Twisse)를 포함한 소수의 총대들은 열렬한 타락전선택설 지지자들이었다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3장 7항에서는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 그들을 간과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로 인하여 치욕과 진노를 받도록 작정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또한 타락후선택설에 호의적인 고백을 담고 있는 다른 개혁신앙문서들과 다르지 않은 고백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