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60>
참으로 감사한 계명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주일성수는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감사의 의무”
103문> 제4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첫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봉사와 그 봉사를 위한 교육이 유지되기를
원하시며,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
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으로 부르고 가
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기 원하십니다. 둘째,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신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
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세 번째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는 여정 중 드로아에 들렀습
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되자 바울 일행과 드로아의 성도들은 떡을 떼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일에 발생한 특별한 사건
그곳 사람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
었던 바울은 밤늦도록 그의 강론
을 이어갔습니다. 이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창틀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
여 삼층누(三層樓)에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이 달려가 그를 일으키
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허리를 굽혀 그를 안으
며 그에게 생명이 있다 말하고, 날이 새기까지 말씀 강설을 계속한 후 그 도
시를 떠났습니다.
그 후의 상황을 누가는 짧지만 분명한 어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드로아의
성도들은 그 청년을 보며 적지 않은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유두고가 다
시 살아나서 다행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의 날에 주어졌
던 또 한 가지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무역항이 있는 이 도시를 최소한 두 번 방문했
습니다. 첫 번째 방문 때 성령님은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어 마게도냐로 인
도하셨습니다. 그때 이 도시에 어떠한 회심자가 있었는지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주님을 아는 자들이 있어서 주의 날에 바울
일행과 드로아의 성도들이 함께 떡을 떼러
모였습니다. 매주 안식 후 첫날
이 되면 성도들이 주의 날로 모였지만 그 날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리스
도의 사도된 바울이 함께 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바울은 아주 오랫동안 말씀을 강설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전했
는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평소 교회와 세상을 향하
여 외쳤던 그의 소리를 생각해 본다면 그곳에서의 강론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중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내용은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
디옥의 회당에서 설교 할 때 바울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날을 주의 날로 지켰던 드로아의 성도들은 부활의 의미를
배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겼지
만 그들에게 갈등과 의심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몸의 부활을 이야기한 바
울을 기롱(譏弄)했던 아덴 사람들과 같은 행동이 이곳에서도 없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한편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의(義)로 여겨 다른 신(神)들을 배척하
는 성도들을 세상은 미워했을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을 은폐하려 했던
대제사장들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은 드로아의 성도들을 거짓말쟁이로 비난했
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
게 이와 같은 고난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날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죽은 줄로
만 알았던 한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
에 확신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눈앞에 한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생명
을 얻은 그 청년을 목격한 성도들은 부활의 메시지를 확신함으로 소망을 가
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사도는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지금 사도가 가는 길은 영광을 받기 위
함이 아니라 결박당하기 위한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그를 다
시 못 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드로아의 성도들은 그날에 듣고 본 것을
인하여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의 날에 일어났던 그 사건은 그 뒤로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주일에도 그 다음 주일에도 그 은혜는
반복되어 성도들에게 확신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시대든 참 성
도는 진리로 인한 고난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성도는 선
한 행실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선한 증거를 얻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
는 진리로 인해서는 배척을 받을 것입니다. 선한 증거를 얻으면서도 배척을
받는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최후 심판의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진정
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위로받
을 방편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일입니다. 말씀의 강설과 찬송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
명을 확인하고 위로를 얻는 복된 날이 바로 주일인 것입니다.
주일에 다른 무엇을 하지 못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일에 편리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
니다. 그렇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참으로 감사
한 의무입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킬 때 고단한 삶 가운데 숨어있는 참 안식
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 참된 위로 누리게 돼
드로아의 성도들에게 허락하셨던 그 은혜를 우리도 매 주일 바람이
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