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간 교제의 조건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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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35>

성도 간 교제의 조건

이윤호 장로/‘선교와 비평’ 발행인

55문> “성도의 교제”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답>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
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
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신앙의 선조들에게는 늘 고난이 뒤따랐습니다. 그들이 올
바른 고백에 따른 교회로 모였을 때 기존 교회와 세상 통치자들이 그것을 인
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참 교회를 찾아 먼 길을 떠났
습니다. 그 길은 고향과 친척과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길이었지만 참 교회
에 속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었습
니다. 

참 교회 위해 가족과 생업조차 포기해

그렇지만 개혁주의 신앙을 자각한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은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
다. 당시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파(派)라 불렀던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니고데모파라 불린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
던 니고데모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주님을 찾았다는 데서 유래합
니다. 그렇지만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은 이유에 대해 명확히 단정지
을 수 없으므로, 니고데모파라는 이름의 적절성에는 일찍부터 의문이 제기되
어왔습니다.
이들은 사상적으로 개혁가들의 주장과 가르침에 동의하는 사람들이었습니
다. 그들은 당시 교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신학 속에서 비성경적
인 요소를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교회의 체제를 이루고 있던 제도들 
속에서 세속성을 찾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개혁신앙을 고백
하는 성도들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로마 교회에 머물러 있는 쪽
을 택했습니다. 
니고데모파라 불리는 이들이 취한 태도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
다. 참된 신앙은 누구와 함께 교회를 이루는가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개
별적 관계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가 박해 아래 있던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 
바람직해 보일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개혁주의 교회가 표면으로 드러난다면 기존 교회의 공
격이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적으로 부패한 교회에 속해 있더
라도 개인의 경건 생활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
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 놓여있는 한 가지 전제는 성도들 
간 고백이 다르더라도 교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혁가들에게 있어서 고백과 교제의 분리는 허용될 수 없었습니
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성도의 교제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이
해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성도들 간의 교제
를 하나로 묶어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몸
의 지체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성도들 간의 교제는 그
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고백의 통일위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슬픔과 고통을 
당한 형제들이 있을 때 심방하고 위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형제 
중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자가 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
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되도록 많은 시
간을 공유하려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들만으로 성도의 교제가 이
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으로 하나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다른 지체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의 가르침은 고백에 기초한 교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형제들
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참 교회의 가
르침으로 연합되고 권징에 순종하도록 하는 교제일 것입니다. 이러한 교제
는 혼탁한 세상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서로 돌아보
게 하여 형제에게 진정한 유익과 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늘 성도들의 교제를 방해해 왔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 
자체를 훼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가 그러한 때였습니다. 이
러한 사단의 시험을 견뎌내고 이겨내었던 선조들의 역사를 우리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교회와 세상 통치자들이 죽음이나 육체적 고통으로 위협했
을 때도, 
교회로 모이는 것과 참 고백에 기초한 성도의 교제를 중단하지 않
았던 신앙의 모범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앙고백 위에 있어야

소수를 제외한 우리시대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제의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단의 훼방이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교제의 열심 속에서 그리스
도에 대한 고백을 떼어 내려는 것이 사단의 계략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