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coffin) 곁에서 …”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교육학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에 민감하고 그 치유에는 비교적
즉각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 정서적 아픔과 상
처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가슴에 묻어두면서 인내로 그 치유를 대신하는 경향
이 있다. 솔직하고 공개적 성향이 강한 서양 문화에 비하여 동양 문화권, 특
히 사생활과 개인적인 문제의 언급에 대한 자제가 은연중 미덕으로 여겨지
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마음과 가슴속에 쌓여 있는 어떤 아픔이나 괴로움을 누구에게 털어놓거나 하
소연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 문화 속에서는 쏟아내지 못하고 쌓여 있는 한
(恨, heartburnings)이라는 정서가 삶의 요소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한은 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부정적인 하나
의 정서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지금도 면면히 그 맥을 이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슴속에 쌓
여 있는 상처와 아픔, 억울함, 한 등의 감성은 분명히 치
유를 필요로 한다. 그것들은 일종의 감성적, 정서적 식중독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어서 적기에 치유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영혼
의 아픔이다.
식중독에 걸리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치유 방법, 곧 어떤 의약의 힘을 빌
리거나 혹은 민간요법을 통하여 토하거나 배설을 하게 한다. 식중독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 그 식중독의 요인이 되는 것들을 몸밖으로 쏟아 버리게 하지
않고, 계속 체내에서 소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
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부정적 감성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
은 깊은 상처와 인격적 모독, 충족되지 못한 현실적 불만, 자신이 제어하기
힘든 여러 가지 욕망이나 성취 불가능으로 보이는 어떤 강렬한 욕구들 때문
에 기인되는 불만 등이 그 중의 일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화되지 못한 감성들이 자신 안에 오래 침잠해 있으면 한 사람
의 성격이나 정서, 인격에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
다. 심하면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으며, 또 그 증세가 극에 달
하면 불특정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물리적 위해(an physical injury)를 가하
거나, 심한 경우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자신이 소화하거나 제어하기 힘든 이런 부정적 감성처리를 위하여 사람들은
대개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있다. 먼저는, 전문 상담자를
찾아가 도움을 받거나 혹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에게 가슴을 열고
자신의 문제를 쏟아냄으로써 마음의 시원함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의 위로
와 격려, 조언을 받아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곧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문제해결 방법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서양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과 지도자로서
의 중책에 대한 중압감과 어려움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스트레스의 산(mountain)과 강(river)이 너무 높고 깊어서 이 사람은 죽
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 자신의 심각한 문제들을 털어놓을 수
도 없었고, 또 그것들을 타인에게 고백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불가능성을
깨닫게 된 이 사람은 오랜 고뇌 끝에 마침내 자신만의 해결책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죽으면 들어 갈 관(棺, coffin)을 미리 준비하여 자기 집
밀실에 두었다. 그리고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울 때, 극난한 대인관계의 어
려움에 시달릴 때, 강한 집념과 욕망에서 헤어나기 힘들 때, 또 더 이상 인
생을 살아 갈 의미와 의욕을 상실하여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 등 인생의 막
바지(the bottom line of life)에 이르렀을 때 이 사람은 그 밀실의 관 속으
로 스스로 들어가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실제로 죽는 연습
을 하였다. 그는 이 관 속에 누워서 시신(a dead body)인 자신을 바라보며
제어하기 힘든 감정, 집요한 욕망과 집념 등을 털어 버리는 훈련을 하였다.
때로는 관 속에서 잠을 자면서 부단히 인생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노력
을 계속하였다.
어떤 때는 그 관 속에 실제로 자신이 들어가지 않아도 ‘관 곁에 앉아 있으
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실제로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 그
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고 고뇌스럽게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시신 곁에서 눈
물짓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울음소
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관이 덮이고 묘지로 향하는 자신의 장례행렬 속에서, 또 이미 파 놓은 깊은
땅 속에 자신의 관이 묻히는 과정에서 이 사람은 세상에 대한 미련도, 아쉬
움도, 미움도 없는 깊고 고요한 평화가 잔잔한 물결처럼 조용히 가슴을 적셔
오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관 곁에서’(beside his coffin) 이 사람은 마
침내 세상의 욕심과 집념을 훌훌 털어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깊은 인
생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버리고 포기하고 털어 버려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움켜쥐고 인생
을 살아가는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의 관이 덮이는 순간까지 왜 그리도 집요
하게 그 많은 것들을 움켜쥔 채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할까!
인생 여정에서 자신의 시신이 들어갈 관(coffin)을 미리 준비할 필요까진 없
을지 모르나 마음과 가슴, 영혼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또
이미 죽었을 영적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우리 안에 있다면 인
생의 많은 문제들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