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쓴 편지들이 갖는 목회적 차원의 중요성  _장수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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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편지들(1)

칼빈이 쓴 편지들이 갖는 목회적 차원의 중요성 

장수민 목사_칼빈아카데미 원장

“칼빈의 서신들은 칼빈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
성경적 삶의 원리, 실천 목회 현장 생생해”

오늘날 칼빈주의 신학자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있으나 사실 칼빈
의 서신들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참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그가 취해나간 신앙적인 태도,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목사로서
의 실천 목회관을 볼 수 있다. 

칼빈의 진면목을 담고 있어

칼빈에 대한 평가를 어떤 식으로 내리든 간에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
기는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한 사람의 목사였다. 바로 이 절대적인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는 어떠한 칼빈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는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책상 머리에 앉아 머리로만 신학을 논하는 일부 현대 신학자들이 몇몇 개의 칼
빈의 작품들에 근거
하여 칼빈을 가르쳐 주겠노라면서 나서는 모습이란 얼마나 괴이한 
현상인가!
교회를 섬기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칼빈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가 바로 그
의 서신들이다. 칼빈은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위기나 특별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썼다. 어
떤 날에는 하루에 네 통의 편지를 쓴 경우도 있다. 그것도 온 종일의 예배와 성찬과 여
러 사람들과의 상담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던 주일에! 
그가 쓴 서신에 나타나는 사상이나 대화 또는 지침들은 구구절절이 성경의 가르침에 근
거한 것으로,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이루는 구원 방식들을 제시해준다. 그야말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실천 목회
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칼빈 연구가라면 결코 이 서신들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칼빈 서신들 다양하게 출판돼

칼빈은 임종이 임박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유익하다고 판단될 경우 자신의 서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자로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를 지명하였다. 베자는 샤를르 
드 종
비예르(Charles de Jonviller)의 보조를 받아 칼빈의 사후 11년만인 1575년에 칼
빈의 서신들을 라틴어로 출판하였다. 
이후 여러 종류의 칼빈의 서신 모음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쥴러 보네(Jules 
Bonnet)가 2권으로 구성한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칼빈의 서신, 사필본에 근거하여 편
집한 최초 모음집’(파리, 1854)과 에르멩자르(Herminjard)가 9권으로 구성한 ‘프랑스
어권 나라들의 종교 개혁자들의 서신, 역사적이고 교회개혁과 관련된 다른 서신들과 해
석에 도움이 되는 각주(explanatory notes)가 포함된 출판 모음집’(제네바, 1866-97) 
등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훗날 헨리 비버리지(Henry Beveridge)는 보네의 작품을 포함하여 이후 여러 사람이 편
집한 칼빈의 서한들을 수집하여, 날짜가 정확하지 않은 18개의 서신을 포함하여 총 686
통의 서신을 담은 서한집을 펴냈다(AGES Software: 알바니, 1998). 하지만 해설에서 의
외로 상당수의 오류를 포함하고 있어 조심스럽다. 그러나 교회개혁사에 대한 어느 정도
의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을 것이어서, 이 작품에
서 상당한 유익을 얻을 것이다. 

반면 에르멩자르의 작품은 중요한 해설을 담고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지만 
또한 1544년 이후의 서신은 출판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지금
도 이따금씩 빛을 보지 못했던 칼빈의 서신들이 발견되어 출판되곤 한다. 
필립 멜란히톤과 율리히 츠빙글리와 칼빈의 저서들로 구성된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
어 판의 ‘종교개혁자들의 작품 전집’(Corpus Reformatorum)은 총 101권으로 구성되
어 있는데(Brunswick, 1863-1900), 이 중에서 칼빈의 작품은 무려 59권으로 구성되어 
‘칼빈 작품 전집’(Joh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을 구성한다. 여기
서 다시 칼빈이 당대의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 받은 서신이 차지하는 분량은 무려 11권
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여기에는 4,302통의 서신이 실려 있는데 칼빈의 서신만 
1,300여 통에 이른다.

많은 대상들에게 보내진 서신들

칼빈은 편지쓰기의 명수였다. 실제로 어떤 신학자도 칼빈만큼 양과 능력과 관심 면에
서 필적할 만한 서신을 남기지 못했다. 이 서신들을 통하여 칼빈은 개혁된 신앙의 심오
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서 권
면하기도 하고, 고통받는 형제들
에게는 위로를 주고,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현명한 정치가로서 베
른, 사보이, 프랑스와 제네바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려운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
결하기도 한다. 
그의 편지의 수신자들에는 당시의 거의 모든 개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멜란히톤, 부
써, 불링거, 파렐, 비레, 슐처, 파브리, 크랜머, 체크, 녹스, 베자, 베르미리, 아 라스
코, 미코니우스, 쉬트롬, 오트만, 드 팔레와 그의 부인, 노르망디 기타 등등. 
그리고 각국의 군주들도 있어서 프랑스 국왕 앙리2세, 나바르의 마르게리트 여왕, 부르
봉 왕과 그의 동생 꽁데 공, 페라라의 르네 공작부인, 폴란드의 지기스문트 아우구스투
스 국왕, 팔츠의 오토 하인리히 선제후, 뷔르템베르크의 크리스토퍼 공작 등이 있다. 
또한 정치인과 고위 관리들로 영국의 섭정 서머싯 공작, 폴란드의 라지비우우 공, 프랑
스의 콜리니 제독과 당들로 그리고 취리히와 베른, 바젤, 장크트갈렌, 프랑크푸르트의 
관리들 기타 등등이 있었다. 
또한 칼빈은 다니엘, 뒤쉬맹, 루쎌, 로제, 리셔부르의 부친 등과 개인적인 서신을 주
고 받았을 뿐 아니라
, 감옥에 갇힌 수많은 개혁신앙 고백자들과 순교자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 보냈는데 리용의 다섯 수감자들인 드 카니 부인, 그레이, 샹베리의 수감된 
학생들 등이다. 당연히 전체 교회들 앞으로 보낸 서신들도 상당한 양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 가치 높은 서신들

이처럼 칼빈의 편지 대상의 국적과 대상과 계층이 너무 다양해서 아예 당황스러울 정도
이다. 칼빈의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들이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스위스에서 네덜란드까
지, 이탈리아에서 스코틀랜드까지, 폴란드에서 영국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으며 그럴찌
라도 칼빈은 시간을 내서 성실하게 답장을 써 보냈다. 
이와 같은 칼빈이 서신 교류는 그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는 답신을 통하여 
한 사람의 신실한 목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요, 그가 개혁교회에 물려준 중요한 
다양한 신학적 원리들을 실제로 역사 현장에서 구현해 냈던 것이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인다면 칼빈이 그의 삼총사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인 비레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서신 배달부로 자신을 시키지 않은 것을 
질투하는 모습이 칼빈의 눈에 들어왔다. 

러자 칼빈은 조용히 앉아서 아무런 내용이 없지만 마치 아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
는 것처럼 반응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을 적어 그 학생을 시켜 편지를 전달한 일
도 있었다. 이처럼 칼빈은 하찮게 여겨질 수 있는 사람 하나의 감정까지도 배려해 주
는 아주 섬세한 사람이요, 곧 하나님의 신실한 목회자였다. 

작은 부분까지도 배려하고 있어

칼빈은 편지쓰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고,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교회를 실제로 섬기는 
실천 목회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칼빈의 서신 속으로의 여행
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