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14>
인간의 생명과 죽음
조석민 목사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바라보아야”
우리는 최근 여러 가지 자연재해(自然災害)와 인재(人災), 살인과 자살을 통
하여 인간의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소식을 듣고 있다.
잇따른 죽음, 충격 가져와
필리핀에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대안학교를 세우려고 현지답사를 갔던 목
사 부부들의 죽음의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한없이 슬프게 하였다. 일본에서
는 소위 ‘묻지마 살인’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아무 원한 관계
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하는 일이 우리 사회
에서도 이미 발생했다.
인간의 죽음이 노쇠하여 기력이 다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은 자연재해
와 인재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으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로 죽음의 소식을 듣는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에 미국에서 일어난 버지니아 대학
의 참사는 한 인간이 일으킨 죄악
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고귀한 생명
들이 아침 이슬처럼 사라졌다.
인간에게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세상은 우리가 원
하고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암담하고 처참한 살인 사
건을 바라보면서 범죄를 일으킨 원인을 규명해 보려고 노력한다.
범죄자에 대한 초기의 정신과 치료의 부재, 외국인으로서 겪은 교육적 환경
의 어려움, 총기 소지를 쉽게 허락한 법규, 주변의 사람들의 무관심 등등을
이 범죄의 배경과 원인으로 말한다.
범죄의 원인을 규명한 것이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
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 동정을 할 수 있으나, 그 이전에 인간
의 타락한 본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신학적 인간론이
다.
최근에 계속되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침울하게 한
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작정을 하고 그 일을 실행
하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최근에 자살로 자기
생명을 끊는 연예인들이 그리
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충격을 주기에 충
분하다.
자살할 만한 이유와 상황, 여러 가지 말못할 일들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
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무너진 느낌이어서 더욱 허탈하다.
총기를 소지하여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불
가항력적인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살을 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
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이 자살을 방조하도록 내
버려두었는지 몰라도 그 사회 속에 있는 교회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이 우울증이라고 한다. 대부분 자살을 한 경우는 우울증 환자
로 주변에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를 믿는 사람
들도 우울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수를 믿고 있어도 자살할 가능성
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사실을 시인하고 우울증 환자 및 그와 같은 증상으
로 고통당하
고 있는 사람들을 잘 살펴서 자살을 미리 방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소
위 ‘묻지마 살인’의 경우도 사회의 부적응 환자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
가 있고, 교회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런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돌
보고 보살펴야 한다.
인간은 교육적 환경이 좋고,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고 모두 악에서 떠나 선
을 행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는 그런 결과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것은 언
제나 무수한 변수가 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고 모두 훌륭한 인간
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교육적 환경이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열악한 부모와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라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미국에서와 같은 참극이나 ‘묻지마 살인’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인간
의 악한 본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자살을 간접적으로
방조하는 현대의 구조적 모순이 내재한 사회 속에서 생명 경시 풍조는 상승
작용을 일으켜 인간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든다. 생명 경시 풍조
는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 아무 감각이 없다면 이미 그런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n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
여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볼 수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성경은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
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
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고 가르친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죽는 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을 취하는 자나
비록 자기의 생명이지만 자기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
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악한 행위일 수밖에 없기에 더욱 가슴 아픈 것이다.
스스로 죽음 결정할 수 없어
하나님이 생명 주셨음을 감사하고 살아있는 동안에 생명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은혜가 넘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