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관련한 학문과 표절의 딜레마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모든 학문에 대한 최고의 객관성 확보해야 허위와 표절 막을 수 있어”
미카엘 폴라니(Michael Polanyi)를 조력하였던 한 철학 교수 헤리 프로쉬(Harry Prosch)가 미카엘 폴라니의 사상의 마지막 발전에 대해서 공저로 『의미(Meaning)』라는 책을 1975년에 출판했다.
미카엘 폴라니에 의해서 그 동안 논문으로는 발표되었거나 텍사스 대학, 시카고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제공된 강의들에 의해서 발표되었으나 아직 출판이 되지 않은 1968년 이후에 진보된 여러 그의 글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미카엘 폴라니의 요청에 의해서 그런 글들이 수집되고 정리되어 출판된 책이다.
그러나 최종 정리한 글의 표현들과 미카엘 폴라니의 원 자료들의 글의 표현들 사이에 원 저자의 표현들을 잘 가릴 수 없을 만큼 최종 글을 정리한 헤리 프로쉬의 공헌이 커서 ‘우리’란 표현으로 출판되었다. 물론 그 책은 대부분 발췌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출처만 밝힐 뿐 그 내용과 표현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나 각주도 없이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라니 사상의 마지막 발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대부분 독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렇게 학자들이나 공인들의 학문 활동이나 공적 생활에 있어서 그 정직성은 그런 기록물이나 성취 활동들의 자료들에서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인류에 공헌하거나 사회에 공헌한 어떤 특별한 공헌내용들은 그에게 고유한 것으로 돌리면 돌려질수록 그의 생애에 있어서 그의 글이나 강의 및 그 활동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 반복되어 나타나는 내용들을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허위나 표절은 남의 진보나 발전을 나의 것으로 삼았거나 그것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거나 혹은 자신의 새로운 진보와 발전에 있어서 그 전의 진보나 발전과 다른 점들을 밝히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위와 표절 문제들에 있어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지적재산권의 침해나 학문의 도덕성보다 더 큰 무지에 대한 부분이다. 즉 자신이 어떤 한 분야에 진보를 보였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일에 있어서 그 전에 그 진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수집되어 있느냐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사 학위 과정이나 석사 학위 과정에 있어서 그 진위 여부나 진보 여부는 그 제출된 논문에서 제공된 참고문헌들에 근거하여 평가하게 된다. 그렇지만 박사학위 과정에서 제출된 논문은 그 객관성과 그 진보를 밝히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선행된 자료들을 읽었고 그 독립성과 그 진보 내용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자세히 알고 있느냐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점에 있어서 한국에서 요구되는 학위과정의 질적인 수준이 경쟁하고 있는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대학에서 쓰이는 교과서들의 개정판들의 횟수나 개정 주기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오는 전문적인 도서들도 교과서로 쓰기에는 너무 낙후되어 있거나 최신으로 개정된 번역된 저서들이 아니어서 교과서로 쓸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 원 저서를 교과서로 사용될 수 있어도 언어장벽 때문에 그 학업 성취도를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허위와 표절은 그런 정보 부재와 무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문제 중에서 학문의 발달이 길지 않은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약점으로서 학문의 발달이 오래된 다른 언어권들의 자료들에 대한 정보들이 아주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문의 발달이 어느 정도 많이 공개되어 있는 영어나 독일어 및 불어 언어권들에서 발전된 학문의 객관적 활동에 대한 정보들은 어느 정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 더 오래되었거나 늦지 않은 이태리 언어권, 스페인 언어권, 기타 북구 언어권들의 학문활동 자료들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것이 한국에서의 학문적 활동의 객관성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도서관들의 경우에는 세계 어느 나라든 거기에서 발생하는 제1 자료들을 확보하는 데 아주 많은 노력을 기하고 있다. 그런 자료수집들이 어떤 의미에서 바로 한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국가 안에서의 아무리 뛰어난 진보나 발전일지라도 다른 국가들이나 이웃 국가들에 의해서 그 진보나 발전이 이미 알려져 있다면, 그런 것들은 진보나 발전이 아니라 허위나 표절이 될 수밖에 없다.
생활의 기본에 있어서 도시문화의 발전, 주거 생활의 구조, 그 생활 물품들의 디자인들과 재료들, 그 제조 기술과 모양 등 세세한 것들이 이미 주전 7천 년 전부터 발달되었기 때문에 세계 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진보와 발전을 따지는 평가는 그 모든 역사에 대한 절대 평가를 향하여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그런 허위와 표절을 막을 수 있다.
신학의 경우 더 심각하다. 신학은 오늘날 남아 있는 어떤 학문 분야들보다 가장 오래되었고 그 전문성에 있어서 가장 크고 깊은 분야이지만, 그 전문성에 있어서 의학이나 법학 및 과학 일반에 비해 스스로 자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부터 그 전문성의 광범위한 성격에 있어서 자문하는 자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른 학문 분야에 의해서 비판을 받고 역사가 길지 않은 종교들이나 신흥종교들과 함께 어떤 특정 영역으로 몰아 세워지고 있다.
신학은 지금까지 있어 왔던 문명의 모든 언어권들의 진보에 대한 연구, 헬라 로마 문화로부터 기독교가 자국어로 글을 남기지 않을 만큼이나 객관적 자리를 얻어 왔던 모든 교부들의 자료들, 현대 학문들로부터 성취되었던 자연과 문명에 대한 학문적 객관성에 대한 모든 자료들로부터 그 최고의 객관성을 다 확보해야만 진정한 허위와 표절을 막을 수 있다.
교회가 좀 더 깊고 넓은 그런 절대적 기준에 의해서 그 진리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 허위와 표절에 대해서 비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와 일반 학문 세계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허위와 표절 문제는 직접적으로 교회에서 주장하는 진리문제에 대한 다른 반전에서의 비판임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