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 위기 극복과 신자들의 삶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상급 가치관 가져야”
본 칼럼의 글을 통해서 지난해 10월 세계적 금융위기의 본질이 크게 알려지
기 전에도 이미 엿보인 초기 위기 현상의 근원적 원인과 관련해 채권시장이
나 주식시장, 현물시장 및 파생상품시장에 관계없이 빠른 정보의 공유로 인
한 모든 시장들로부터 관찰이 되는 투기성 몰이 현상과 서비스형 경제의 과
도한 규모가 근본 문제로 언급된 바 있다.
투기성 몰이 현상이
경제 위기 초래해
다른 국가들의 경우 그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당연히 수출 의존도를 줄
이는 방향에서 적은 정부, 책임을 강조한 자유의 확대, 첨단적 평생교육 강
화 및 개인적 직업의 다변화를 통한 전체적 내수 경제의 규모를 확대하는 방
안이 제시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세계 경제가 장기적 안목에서 회
복될 수 없는 근거가 분명히 알려지
고 있다. 미국 경제 위기의 핵심으로써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의 채무 및 개
인 채무가 미국의 국내 총생산의 4배에 달한다는 점은 믿기가 어렵다.
더구나 미국의 국내 총생산에 비해 쉽게 거품이 될 수 있는 파생상품시장의
규모가 우려보다 더 크고 그 내용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 역시 미국도 해결
할 수 없고 물론 세계의 어느 국가도 도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한 거품경제 속에서도 미국 국민 모두의 소비지출액이 총생산의 70% 이
상을 차지할 만큼 그렇게 허영적 소비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라
게 된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미국 재정적자가 앞으로 국내 총생산에 비
해 얼마나 될 것이냐도 중요하지 않고 국내 총생산에 비해 소비지출액의 비
율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친히 설계하고 창조한 생산물들과 서비스들을 소
비한다는 어떤 혁명적인 부의 축적 방식에 대해서 예견하였던 앨빈 토플러
의 주장도 무의미해 졌다.
최근 취임 연설문에서 세계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함께 단순히 과거의 인
물들을 모방하는 수준이 아닌 고유한 구사력을 자랑하였던 오
바마 미국 대통
령이 이제 큰 정부가 될 것이냐 작은 정부가 될 것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정
부가 하는 일이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데 그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하는 말
이 이해가 된다.
또한 부를 산출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시장 경제의 힘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번영하는 자들에게만 기호적인 나라는 오래 번성할 수 없으며, 경제의 성공
은 항상 내수 시장의 크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번영의 범위에 의존하
며 원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확장하는 능력에 의존한다는 말로 약자
의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태도는 그나마 안전한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
다.
미국의 경제구조와 맞물려 있는 한국의 경제구조의 경우 IMF의 구조조정의
경험과 미국에 수출 의존도가 약간 낮은 사실을 가지고 위로를 삼을 것이 아
니다. 오히려 미국의 경제적 여파를 흡수할 수 없는 경제규모와 경제구조의
취약에 대해서 염려해야 될 것이다.
우선 독일의 경제구조처럼, 한국의 내수 경제구조를 작은 규모일지라도 세
계 경제의 축소판으로 만들어 질 좋은 수출품목들이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내수 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국민의 생활과 소비의 질
을 높여야 한다.
지식산업과 문화산업도 그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내적 실질 소득수준을 높여
야 한다. 뉴딜 정책을 쓰더라도 그 자체가 소모생활의 한 형태인 분야에 대
한 투자는 줄이고 미래 생산성이 높은 분야들의 발굴과 그 분야들에 대한 집
중적이고 합리적이며 빠른 투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의 위기 앞에 책임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과 정직, 용기와 공명 정대한 경기(fair play), 관대함과
호기심, 충성과 애국심 등 오래된 가치들을 진보의 조용한 힘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의 시장 경제 안에서는 너무 이상적일지 몰라도 오래된 개혁신학의 생활
적 이상들과 가치들이 살아 숨쉬기를 희망한다. 즉 원수를 사랑하고 남의 죄
를 용서하며 남의 죄가 사함을 받도록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고유한 가치
들이 예정론 안에서처럼 하나님의 의지 안에 감추어 두는 높은 삶의 질이 경
제생활 안에 배여 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웃을 돕더라도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를 통해서 선물을 주시는 방식처럼
높은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이웃과 세계 내의 다른 이웃들에
게 자신에게 돌
아오는 것이 없는 방식으로 줄 수 있어야 진정한 도움일 것이다.
하나님께만 상급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으로도 충분한 상급이라는 가치는 그렇
게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쉬운 가치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들만을 취득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삶의 내용에서 버리는 자세와 행동
역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끊임없는 기도로 하나님의 은총
을 받아야 겨우 가능하다.
더구나 하나님의 속성들이 균형잡인 내용으로 우리에게 맺어지게 하는 일이
란 죄만을 쏟아 내는 개인생활이나 단체생활 혹은 사회적 생활 안에서는 거
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이웃 사랑의 숭고한
정신으로 극복해야
그와 같은 노력을 포기하는 그 자체가 이웃과 세계의 이웃들에게 너무나 많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