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진정한 모델은 누구인가?
남웅기 목사_바로선교회
“거짓과 불의와 싸우는 성도들이어야”
어느 분야든 유명한 성공모델이 있습니다. 스포츠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
습니다. 태권도에선 2004년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선수가 있고,
수영에서는 내년도 북경 올림픽에서 금맥을 캐 줄 것으로 기대되는 박태환
선수가 있고, 피겨스케이팅에선 김연아 선수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
다.
성공한 사람들 사랑도 받아
누군가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룰 때 모두들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감동
을 넘어 열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태권도
를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문대성을 꿈꾸고, 수영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겐 박
태환이 우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어디 스포츠뿐이겠습니까? 모든 분야에는 성공모델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
들은 제마다 하고 싶은 게 있고, 갖고 싶은 게 있고, 꿈꾸는 분야가 있습니
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가 꿈
꾸는 분야에서 지존을 차지한 사람을 이상
형으로 삼습니다. 그때부터 그를 흠모하며, 그를 따르며, 그를 자랑하게 됩
니다. 그와 같이 되는 꿈이 그의 삶의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꿈을 이룬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도처에 그 꿈을 방해하
는 것들이 있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꿈을 포기하고 편하게 살 것인가? 아
니면 꿈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떠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인생의 지고한
선택의 역할이며,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준이 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몸부림, 그것을 성경은 ‘굶주림과 목마
름’으로 표현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 5:6).
세상 사람들의 꿈이 무엇인가의 성취에 있다면 성도의 꿈은 무엇인가를 추구
함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를 추구함’은 무엇을 이루는 과정이 아니
라 그 자체가 이미 목적이요. 결실입니다. 의를 추구하는 자가 받을 성경상
의 ‘배부름의 약속’ 역시 물질이 아닌 ‘의의 배부름’ 임을 알아야 합니
다. 그러므로 의인은 무엇을 이룬 것으로 기뻐하지 않고 그 몸부림 자체로
의의 평강을 누리는 줄 믿습니
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모두 존경받지 않습니다. 무슨 책을 썼느냐가 중요합니
다. 인류에 공헌을 끼친 작품인지, 작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준 작품인지
를 세상은 다 압니다. 진정한 작가는 장사치 작가를 작가로 생각하지 않습니
다.
모든 분야에서 다 그렇습니다. 명화(名畵)를 위해 굶어가며 평생을 사는 사
람이 있나 하면, 돈벌이로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한 화가는 돈
벌이 화가를 화가로 생각지 않습니다. 누구를 성공모델로 삼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부패는 용납해도 무능은 용납 못하겠다’는 말이 유행합니다. 아이
가 거짓말 하는 것은 용납해도 성적 나쁜 것은 못 참는 오늘날 현실의 반영
이라 하겠습니다. 남의 아들 두들겨 패고 오는 것은 참아도 남에게 맞고 오
는 것은 못 참는 요즘 세대부모의 심성을 빼다 닮았습니다. 슬픈 현실입니
다. 세상이 엉망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회마저 그러면 못씁니다. 교회란 무능은 감
싸 안아 줄 수 있어도 죄악은 용납할 수 없는 곳입니다. 거짓과 불의와는 싸
워야 하는 게 교회요 성도의 몫입니다.
저는 하나님
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목사이
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성공한 성도
가 거짓에 연루되고, 거짓을 일삼고, 거짓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얼
굴이 화끈거립니다.
더욱 그를 감싸고 추종하고, 열광하는 교계 지도자들을 보면 분노가 치밉니
다. 저들은 왜 의에 목말라하지 않고 성공에 목말라 할까요? 저들도 그렇게
성공만을 추구하며 거짓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감각 없이 오빠부대처럼 열광
하는 것일까요?
의에 목말라 하는 이들 없어
아무도 온전한 의를 이룰 순 없지만 그 몸부림마저 포기해선 안 됩니다. 우
리의 진정한 모델은 성공모델이 아니라 목마른 의의 모델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