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하며
문상진 목사/ 한라산교회
언젠가 한 기독교 기관에서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전부는 기억 못하지만 1위는 ‘자기를 다스리는 것’, 그리고 2
위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었다.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사람들과의 화목, 이것은 비단 목회자들만의 고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
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숙제일 것이다. 참
된 리더자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
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내를 통한 절
제, 그리고 대화를 통한 설득을 필요로 한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나라의 탄
핵 정국을 보면 더더욱 슬퍼진다. 지도자 부재의 시대임을 절감하기 때문이
다.
어떻든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충동적이고 일방적인 정치 스타일로 오늘이
있게 한 제1 책임자가 되었다. 언행의 절제와 야당과의 대화가 부족했다. 또
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도 탄핵을 주도한 야당 역시 그 책임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던 이들 중에 대통령의 말에 기
분이 나빠서 가결에 동참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감정 위주, 충동적 대응
이었다. 이것을 지켜본 많은 국민 역시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탄핵에 대한 반
감으로 여당의 지지도는 급등했고 ‘3.12때 당한 원한 4.15때 복수하자”라
는 식의 언동은 많은 사람들을 감정의 골짜기에서 헤매이게 했다. 이번 총선
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지 간에, 만일 이성에 의한 분별의 결과가 아닌 분노
에 의한 감정적 충동에 의해 투표한 결과라면 그것은, 여·야 누구의 승리도
아닐 뿐더러 국민이라는 마지막 지도자 역시 실패했음을 나타낸 셈이 되는 것
이다.
지난 3월 30일 한라산교회의 헌당 및 임직식이 있었다. 증경 총회장님을 열분
이나 모시고 치러진 감사와 감격의 시간이었다. 예식 순서지를 만들 때 있었
던 일이다. 축하 행사에 몸찬양 순서가 있었다. 서울의 N교회에서 일부러 축
하를 위해 오기로 준비된 자리였다. 그런데 순서지 초안을 보신 한 어르신 목
사님께서 몸찬양 순서를 빼라고 조금은 단
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대외적 행
사에 혹시 경건치 못한 순서가 들어갈 것을 우려하신 보수적인 노(老)목사님
의 배려이셨다. 나는 이를 N교회 목사님께 알렸다. 목사님은 당황하셨으며 난
감해 하셨다. 이미 제주도에 올 것으로 생각하고 연습해 온 단원들에게 뭐라
고 할 것인가를 걱정하신 것 같았다. 얼마 후 N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몸찬양에 대해서 어르신께 설명을 드렸다고 하셨다. 어르신께서 걱정할 정도
의 수준이 아닌 경건한 율동이며 율동곡임을 이해시키려 하셨다는 것이었다.
허락을 하셨냐는 나의 질문에 허락은 못받았지만 어쨌든 안하더라도 단원들
을 참석은 시키겠다고 하셨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섞인 음성이셨다. 조금 후
에 노(老)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들어보니 걱정할 수준은 아니니까 원
래대로 하도록 하자는 승락의 말씀이셨다. 결국 몸찬양은 아름답게 드려졌고
이번 행사에서 설교와 함께 참석한 분들에게 가장 은혜를 끼친 순서가 되었다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초신자도 있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다름(異)을 조화시키는 모습을 생각하였다. 거부당함에 감
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차분히 설
득하여 동의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절
제와 대화의 힘을 느꼈다. 또한 대화를 통해 기꺼이 설득을 당하시는(?) 노
(老)목사님의 너그러움에 은혜를 받았다. 합신 교단의 어르신들의 섬김과 배
려 그리고 양보의 덕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분 목사님의 대화와 타협의 모습
을 보면서 지도자의 그림이 그려졌다. 목회자이건 정치가이건 지도자의 위치
에 있는 자라면 자신의 욕심과 감정을 지혜롭게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
고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통한 화합을 이끌어 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목회 현장에 이러한 절제와 대화 그리고 이를 통한 화목의 열매가 맺
혀진다면 오늘 이 분열과 반목의 시대를 보고 슬퍼하시는 우리 주님께 드려지
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