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를 위한 교회의 준비
권태진 목사
새천년을 맞는 모든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축제와 불꽃놀이로 요란하
게 맞았다. 세속뿐 아니라 교회들도 새천년이란 말을 하며 새로운 각오와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하나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대로 진정 새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나라도 이제 노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여러 명의 자녀
를 두었으므로 아들, 딸을 의지했고 사회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인구가 많았
으므로 노인들은 어른으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약 30년후
에는 3명이 일하여 한 노인을 부양하게 된다. 그때는 노인의 문제가 가정
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도 65세의 노인은 복지관
에서 아이취급을 받는다. 한 주일에 5일동안 매일 300-400명 이상이 무료
식사를 공급받고 있는데 그 중에는 80세 이상된 분들도 상당수 계신다.
지금 정부에서도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노인복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
으나 복지는 정책이나 돈만 가지
고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평안하게 하
고 즐겁게 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성경적 가치관과 마음이 따뜻한 사
람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복지’하면 음식 대접하는 것을 생각했으나
현재는 그들의 문제를 알아주고 외로움을 덜어주고 놀이문화를 개발해 주
고,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도록 신앙을 가지게 하여 생의 마감을 기쁨으
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된다. 그러므로 차원 높은 복지는 영혼
과 육체를 돌보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미래에 이러한 효과적인 복지
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노령화사회에서의 주역을 교회가 감당해
야 할 것이다. 잉태한 여인이 산달이 가까이 오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옷, 젖병, 환경을 생각하며 출산준비를 하게 된다. 교회는 금방 도래할 노
령화사회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 해야 될 것이다.
앞으로의 교회는 큰 건물이나 인원을 자랑할 것이 아니다. 또한 지식이나
학벌을 앞세워서 우월의식을 가질 때도 아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의 시행
착오만으로 족해야 한다. 바르게 한다는 명분아래 분립이 계속되어 교단도
많으나 세속으로부터 외면당
하고 기독교 인구의 감소라는 말이 나오고 있
지 않는가? 생명의 종교라고 말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크리스천이
잠자고 있을 때 우상종교로 업신여김 받는 이들은 정치를 등에 업고 문화
재 관리라는 명목으로 사찰을 복원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그 힘으로 연
꽃 마을을 만들어 복지에 힘쓰고 있다.
그뿐인가 비성경적이며 교리에 구원이 없다고 하는 한 종교는 꽃동네를 만
들어 복지를 하고 이제는 학교까지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데, 가장 잘하고
있다는 교회는 어두운 곳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질운동이 아니므로 나타나는 것은 없으나 이 시대에서
꼭 필요한 등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온 성도와 교회가 노령화사
회를 위해 준비해 보자. 교회의 규모나 인원에 맞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사회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실천이 되고 인재들의 훈련장이 됨으로 봉
사는 희생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기쁨이다.
며칠 전 한 목회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교회는 성도가 약 일백 명 정
도인데 노인정 관리를 위탁받아 경제적인 것은 정부가 부담하고 여전도회
에서 중식을 준비하여 공급하며 그 지역에서 영혼구원과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하며 보람을 느낀다는 소식이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
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
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그리스도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왜 육신의 동생들에게 맡기지 않고 제자 요
한에게 맡겼을까? 왜 마리아는 육신의 아들을 떠나 사도 요한의 모심에 응
했을까? 참된 신앙인은 주님과 마리아의 노년에 대한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키 위해 헌신된 일꾼을 준비하고 시대적 흐름을 보며
교회 전체와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신앙이 없는 혈육이나 자녀나 정부를 의지하는 것보다, 복음 안에서 차분
히 준비하는 것이 미래를 보는 앞선 자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그것만이
한국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는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