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자에게 임하는 부활의 능력
성주진 교수_합신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
해 계신다. 따라서 오늘 축하하는 부활절의 진정한 의의는 부활 사건의 감상
적 회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상의 죽음과 함께 영단번의 역사
적 사건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영원한 복음의 진리로 선포하고, 부활하신 주님
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오늘의 삶에서 살아내고 사역에서 드러
내는 데 있다.
구원받은 ‘죄인’인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며 맡은 사
역에 충성할 수 있을까? 부활절에 다시 확인하거니와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
는 길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의 영인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것인가? 육신
과 죄에 대해서 죽는 길뿐이다. 부활의 능력은 죽은 자에게만 임하기 때문이
다.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한다. 이
러한 시대에 죽는 자에게만 부활의 능력이 임하는 진리야말로 삶과 사역의 모
든 부문에서 교회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메시지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는 복음의 근본 진리를 새롭게 변증하는 일에 필수적이
다. 현대신학은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사실이 없어도 부활의 능력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회개 없는 용서와 자기부인 없는 자기긍정을 제시한다.
다양한 자유주의와 낙관론도 죄에 대한 죽음이 없이 부활의 삶이 가능하다고
유혹한다. 세속적 진보주의도 인류의 미래가 과학, 산업, 기술의 발전에 달
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 없이 부활의 능력을 누리
기 원하는 모든 인간적 노력과 종교의 피상성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십자가를
통한 새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죽어야 산다는 부활의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가능하게 한다. 성화는 자
아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성화의 원리
이다. 따라서 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아도 거
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착각이다. 십자가 없는 ‘영성’의 담론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부활의 진리는 경건의 연습을 위한 동력으
로, 구원은 은혜로 얻
지만 성화는 행위로 이루려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 그리
스도를 본받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부활의 은혜는 나아가서 완전주의의 교만
과 율법주의의 협소함 그리고 방임주의의 반동을 극복하게 한다.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복된 진리는 능력 있는 목회사역의 길을 제시한다. 부
활의 은혜는 목회현장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신실한 종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준다. 숫자의 힘, 물량의 힘, 조직의 힘이 아닌 십자가의 약함으로 교회를 세
울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육신적인 강함에
의존하면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한국교회에 당면한 과
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부활의 능력을
힘있게 나타내는 일일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십자가의 도를 충실하게 따르
는 목회자와 교회에게 부활의 풍성한 열매를 약속하셨다.
죽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활의 능력이야말로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
는 길이다. 세상은 교회의 강하고 부한 모습에서 감명을 받지 않는다. 불신자
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약한 가운데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교회가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정죄하지 않고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세상을 부둥켜안을 때 세상은 감동을 받는다. 세상은 그리스
도인들이 자기부인과 낮아짐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한 부활의 진리는 21세기에 확립해야 할 선교의 원리를 제공한다.
한국교회가 경제력이 생기면서 일각에서는 돈과 기관의 힘으로 선교하려는 경
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선교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교회에게는 이제 선교
의 현장에서 십자가의 방식을 확립하고 모델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
다. 세상적 강함이 아니라 십자가의 약함으로,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
의 어리석음으로 선교하는 모델을 제시해달라는 선교후발국의 요청을 받고 있
다. 이는 부활의 능력이 십자가의 약함 가운데 역사한다는 믿음으로만 가능
한 일이다.
세상의 지혜는 여전히 죽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
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음으로 사는 부활의 역설을 찬미한다. 죽음 없이 새
생명이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은 없으며, 부활이 없이는 복음의 능력도
나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모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죄에 대해 죽
지 않으면 부활의 능력을 누릴 수 없다. 누구보다도 삶과 사역에서 부활의 능
력을 체험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매
일 죽는 것만이 부활의 능력을 덧입는 길이다. 이러한 부활의 은혜야말로 부
활하신 주님이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