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선교사자녀)들과의 하루
합신세계선교회(PMS) MK담당간사 이 애 린
사진으로 확인했던 모습보다 훌쩍 자란 실물의 아이들을 만난 나는 첫 만남이라 조금 어색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박선교사님 내외분과 함께 버거킹에 앉아서 기다리던 아이들은 나와 김선교사님 아들을 보고 짐짓 낯선 표정을 드러냈지만, 이내 부모님과 익숙한 듯이 인사를 하고서 나를 따라 영화관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우리가 함께 보기로 예정된 영화는 “장화신은 고양이”였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팝콘과 음료를 샀고, 입장시간까지 조금 남아있는 대기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잠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들어보니 지금껏 부모님을 따라 특수지역에 살다가 비자문제로 잠시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 그러고 보니 오늘 모인 아이들 모두 C국에 삶의 근간이 있는 MK들이었다.
특수한 지역상황 때문인지 기존 한국의 청소년들을 만날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조숙함과 살짝 긴장감 어린 태도를 보며, C국의 어느 변방 도시에서 잠시 MK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왠지 모를 친근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웃음소리나 반응은 없었지만, 나름 집중해서 즐겁게 감상하고 있는 듯 했다. 보고나서 평을 물어보니 재미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라 조금 식상했던 모양이다. 내용이 깊은 영화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뛰어난 영화를 좋아할 법한 그 또래 아이들과는 좀 다른 느낌을 갖는 듯 했다.
어쨌든 아쉬움과 즐거움을 가지고 피자헛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친구들은 좀 사귀었니?”이동이 잦은 MK들의 특성상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이 아이들에게 선교지에서의 생활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제는 타국에서의 삶이 많이 익숙해진 편임에도 사람 관계 문제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지인 친구는 더 사귀기 어렵고요. 같이 공부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조금만 공부하고나면 다들 다른 곳으로 떠나서 헤어지니까, 거의 친구가 없어요.”
또래와 어울리는 방법보다 어른들 사이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먼저 배우고, 더 익숙해지는 아이들.
혹자는 MK들이 특성상 신앙교육이 비교적 철저하므로 자연스럽게 그 또래 아이들보다 더 성숙한 태도와 성품을 가지고 현지에서 잘 적응하고 살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MK사역에 직접 발을 담가보기 전까지는 비슷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과 깊은 관계를 가질수록 감정적 욕구와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대하는 아이들과 전혀 다름이 없는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일 뿐임을 알게 된다. 다만 그들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시는 부모님 밑에 자라다보니 자신의 욕구를 절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살기 위해 자신 나름의 결론과 방법으로 행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그 고백 한마디에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 언어를 2중, 3중으로 배워가며 의사소통의 고통을 자주 경험하고, 특수한 부모의 직업상 자신의 언행이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학교가 마땅히 없어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집이나 기숙사 생활을 일찍부터 고민해야 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환경이 적어서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되어도 여전히 자신이 이방인이란 느낌을 가지게 되는 MK들만의 현실이 그대로 보여 지는 듯 했다.
오늘처럼 영화를 보고 교제를 나누는 짧은 만남의 시간이 이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큰 힘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참 작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누군가가 이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기도해주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 깊이 응원할 것이란 사실이 그 언젠가 이들의 성장과정 속에서 큰 위로가 되는 날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