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과 들어야 할 말 – 열왕기상 22장 1-26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자기 욕심 따라 산 아합은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 맞이해”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선별적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골라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향이 병적으로 강하게 되면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에 대하여 이견을 내는 사람에 대하여는 자기 자신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으로 단정을 짓고 그를 적대시하곤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인정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더욱 강합니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옳고 정당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맞는 말만 골라 듣는 경향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골라서 듣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고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곁에 두고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를 막고 곁에 둔 그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불통(不通)이 됩니다.
이런 경우 곁의 사람으로 뽑힌 사람들은 자기를 뽑아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계속해주게 됩니다. 정치판에서 오랜 세월 익숙히 들어왔던 김심(金心)이니 박심(朴心)이니 하는 말들이 생긴 연유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그 사람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풍조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권력자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이 사람들은 그 대가로 생존을 비롯한 많은 것을 보장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사실은 서로 자기의 잇속을 챙기기 위하여 속고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한 일이 단순히 개인차원에서가 아니라 한 조직이나 국가 권력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는 그 파급효과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숱한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헤아려 그 말을 해주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그가 정치판의 정치인일 때는 모리배가 되고, 선지자일 때는 거짓선지자가 됩니다. 그가 강단의 설교자일 때는 삯군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이 점에 있어서 매우 대조적입니다. 아합 왕은 아람 왕과 전쟁을 하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남북 연합군을 형성하여 전쟁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을 하는 것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먼저 물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를 즉각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아합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또 다른 선지자를 데려다 들어볼 것을 요청합니다. 그때 아합 왕이 일부러 부르지 않은 한 사람의 선지자인 미가야가 불려오게 되고, 그는 400명의 다른 선지자들과는 정 반대의 예언을 합니다.
미가야는 아합이 일부러 따돌리고 부르지 않은 선지자였습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을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합은 미가야를 몹시 증오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동조해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아합은 자기가 하는 일을 놓고 하나님이 복 주실 일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찾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복 주실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을 찾는 왕이었습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는 정권을 잡은 아합의 편에 서서 언제나 왕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말을 골라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왕의 생각을 거스려 아니라고 하여 왕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념적으로 진보거나 좌파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왕과 얽힌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의 말에 동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한 사람보다 왕의 기분을 맞추느라 아부하는 사백 명의 말에 더 힘을 얻고 자기 길을 간 아합은 그 전쟁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고, 그것이 그의 최후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자리에 있을 때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간 기분 좋자고 평생을 모리배나 거짓선지자에게 속으며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사실이야 어찌됐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어서 그의 기분을 맞추어주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 이것저것 보장받으며 편하게 살자고 평생 사람 눈치 보며 비겁하게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