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거기에 있기_박부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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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거기에 있기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무더위를 뚫고 교회당에 들어서는 성도들. 거기에 있어 고맙다. 가을엔 감 따 달라 겨울엔 보일러 고쳐 달라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다리가 불편해 차를 태워 주길 기다리셨다. 늘 그 자리, 녹슨 대문 앞이었다. 때론 귀찮기도 했지만 예배 때마다 앉아 조시던 그 모습이 눈물겹게 그립다. 요양원에 계신다. 빈자리가 크다.

  스위스의 어느 교회에서는 저녁 집회에 부러 전등을 켜지 않았단다. 각자가 자기 등불을 들고 왔단다. 제 자리에 없으면 교회는 그만큼 어두울 것이니 거기 있기 위해 더 열심히 모였단다.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삶과 신앙, 목회란 무엇일까?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곳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것’ 이전에 ‘거기에 있는 것’이다. Do보다는 Be이다. 목회 활동은 지치도록 움직이고 큰 업적을 쌓는 거라는 강박. 그런 생각으로 진부한 질문을 쉽게 던진다. 몇 명이나 모이나요? 어떻게 먹고 사나요?

  그리도 궁금한가? 시인 이백은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라 했다. 하늘이 내게 재능을 준 것은 반드시 쓸모가 있어서라는 뜻. 권주가의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새겨 봄직하다. 바울의 지체론(고전 12장)처럼 하나님은 각인에게 재능을 주어 제 자리에서 유용하게 하셨다.

  거기에 끝까지 있는 자들. 그들을 명장(名匠)이라 한다. 거기 오래 있기는 쉽지 않다. 비바람 치고 땡볕이 쏟아지고 억울하며 춥고 배고프다. 그래도 거기에 있기. 그게 전문가의 품새이다. 대부분 거기를 떠나지 않고 붙박이로 집중한 자들이다.

  피차 많은 걸 요구하지 말자. 거기 있는 것이 아름답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김수영의 시 ‘봄밤’의 구절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다. 제 자리에 없는 게 비극의 서막이었다.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고 했다. 늘 그 자리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거기 있으라 하신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자랑거리 없이 못났어도 ‘있는’ 것이 ‘하는’ 것이다. 그래, 힘들어도 우리 거기에 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