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chochuseok@hanmail.net >
미로슬라브 볼프| 배제와 포용| IVP | 2012년
“불의와 폭력에 대한 최종적 정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
미로슬라브 볼프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이다. 그는 이 책을 쓰는 동안 무척 어려웠다고 술회한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동족이 세르바아인에 의해 짐승처럼 짓밟히고 있었으며,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적합한 반응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그의 신앙은 분열된 듯 했다고 술회한다. “희생자들을 위해 정의를 성취하라는 명령과 가해자를 끌어안으라는 부르심 사이에서, 내 신앙 자체가 분열된 것 같았다.” 정의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포용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자신의 신앙 안에서 서로 조화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 난제를 다룸에 있어서 그는 본서를 크게 둘로 나눈다. 제1부에서는 볼프의 핵심 사상인 배제(exclusion)와 포용(embrace)이 주로 다루어지며, 제2부에서는 우리 문화와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가치를 다룬다. 즉 정의와 진실과 평화의 문제를, 그것들을 교란하는 억압과 기만과 폭력의 문제와 함께 다룸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자칫 이런 문제들을 다룰 때 구조 개혁이나 사회 변혁에 초점을 맞추기 십상인데 볼프는 그것을 신학자의 임무라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관찰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구조 개혁이나 사회 변혁은 일차적으로는 정치가나 사회학자나 경제학자의 몫이지 신학자가 논의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발 때문에 그는 사회적 행위자라는 정체성에 집중한다. 사회적 행위자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다. 배제와 포용이란 갈등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나 우리를 중심에 두면 타인이나 그들은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서로 연결이 되지 못하므로 배제가 일어나게 된다. 이 배제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나와 타인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양자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포용이 일어나려면 사회적 행위자 안에서 네 가지 단계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즉 회개와 용서와 포용과 잊어버리기가 필요하다. 이 네 단계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사회적 행위자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가 속한 사회 구조에 영향을 주려면 먼저 자기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회적 행위자로서 포용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행한 불의와 폭력의 문제는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법을 통해 정의가 제한적으로 시행될 수는 있겠지만 정의가 온전히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희생자를 위한 정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끌어안으심은 일어났지만 정의의 실행은 미래로 미뤄진다.
그 실행은 어린양이 아닌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백마 탄 자의 폭력에 의해 가해자의 불의와 폭력에 대한 최종적 정의가 실행될 뿐이다. 이렇듯 최종적 폭력은 하나님만이 독점하시고 인간에게는 그 폭력 행사가 금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칼을 들고 백마 탄 자의 깃발 아래 모여서는 안 되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따라가야 한다.”
볼프의 논의는 법이나 도덕으로써 평화 수립을 꿈꾼 홉스나 칸트와도 다른 것이다. 개인에게는 사랑의 규범이 적용되나 집단에게는 정의의 규범이 적용된다고 한 라인홀드 니버의 현실주의와도 다르고, 정당방위로서의 폭력을 거부하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제시한 존 요더와도 다른 길을 제시한 것이다. 복음의 사회적 적용을 더욱 성경적으로 접근시킨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64주년을 맞이한 6.25전쟁은 남북 쌍방에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우리는 남북의 대치는 물론이고 좌우 이념 대립으로 교회 안에서조차도 그 갈등을 자주 내비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신선한 신학적 모색을 제공하며 미래 통일 조국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빛을 비추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