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가라지가 있어도 교회 맞습니다”
< 최광희 목사_행복한교회 >
가라지 뽑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는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요즘 교회가 많이 타락했다고 신자도 불신자도 걱정합니다. 심지어 이건 교회가 아니라며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원래 그런 모습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남의 농사를 망치려면 그냥 뽑아버리든지 발로 밟아버리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는데 굳이 가라지 씨를 구해다가 덧뿌리는 수고를 했을까요?
고대 사회는 수치심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남을 괴롭히려면 그에게 수치를 안겨 주곤 했습니다. 수치를 주는 일환으로 남의 곡식밭에 가라지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모름지기 농부라면 밭에 잡초가 없이 깨끗하게 관리하고 밀을 잘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밭주인을 칭찬합니다. 어떤 사람의 밭에 밀만 자라야 하는 데 가라지가 잔뜩 나 있으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밭주인을 욕할 것입니다. 그렇게 수치를 주는 것이 원수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하나님이 좋은 씨를 뿌려서 성도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에 원수 사탄이 몰래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키도 크고 무성해서 가라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가라지가 자라서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목사도 되었습니다. 이제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듯이 보입니다. 지금 교회는 매우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같이 수치를 당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가라지를 싹 다 제거해 버리지 않고 왜 교회를 이 모양으로 내버려두실까요?
너무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이 그럴 것이라고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는 걸요.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가라지를 제거하지 않으실까요? 그것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다친다고요. 그냥 두었다가 추수 때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천국의 특징이라고 하셨는 걸요.
시골에 가 보면 대부분의 논밭은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곡식(벼)보다 잡초(피)가 많아 보이는 밭이 있습니다. 피가 벼보다 키가 커서 피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고구마 밭은 풀밭인지 헷갈리는 밭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건 완전히 풀밭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을에 가 보면 풀만 자란 줄 알았던 그 밭에서 고구마가 많이 나옵니다. 피가 더 많은 줄 알았던 그 논에서 벼를 많이 수확합니다.
지금 교회는 가라지가 너무 많아서 우리도 속상하고 불신자도 실망합니다. 하나님이 속히 가라지를 제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라지를 뽑지 않으십니다. 잡초가 곡식과 뿌리가 얽혀 있어서 잡초를 뽑으면 곡식이 뽑혀 나오듯이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성도와 여러 가지 인간관계로 엮여 있어서 가라지를 뽑으면 성도가 같이 상처를 받습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곡식이 좀 다치더라도 가라지를 제거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잠깐만요, 그 뽑혀나갈 곡식이 바로 당신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안 되죠. 그게 누구든지 가라지를 뽑다가 함께 뽑혀나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한 성도를 아껴서 지금 수치를 당하면서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풀밭이지 무슨 고구마 밭이냐고 욕해도 그게 고구마 밭이 맞습니다. 그 속에서 고구마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가짜들이 득세하는 교회가 무슨 거룩한 교회냐고 욕해도 교회 맞습니다. 그 속에서 성도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 뽑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는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라지를 주목하고 비난하기보다는 내 믿음이 굳게 서는 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참으로 교회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며, 우리 자신이 가라지가 되지 않도록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